2026년 영성일기

처음부터 말하여 오신 분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2. 26. 06:43

2026.2.26. 목요일

요한복음 8장 21-30절

 

- 예수님의 예고와 유대인의 오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 위에서 나신 예수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 처음부터 말씀해 오신 예수님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 예수님과 아버지의 특별한 관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게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

처음부터 일관되게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지만 믿지 않았다.

예수님을 향하여 또 묻는다. '네가 누구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 세상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인지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신다.

위로부터 오신 자를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자만이 알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죄 가운데서 죽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늘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늘 함께하신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도 승천하시면서 제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에게 붙어있을 때만이 안전하고 진정한 평안이 있다. 

 

주님

자기가 듣고 싶은것만 듣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처음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 곧바로 깨닫는 지혜와 은혜가 있게 하소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그리스도 메시아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이 진리를 단단히 붙잡고 주님에게 항상 붙어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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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주터 말하여 오신 분 ]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부터 말하여 온 자'라 밝히시며, 

위에서 나신 하나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만이 죄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릅니다.

 

(21절)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종교적 경고가 아니라, 구원을 떠난 인생의 실상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없는길은 결국 자기 확신의 막다른 길로 끝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새로운 도덕이나 가르침을 주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22-24,30절)

위에서 나신 분입니다.

아래의 인간은 믿음 없이는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으리라"는 말씀은

심판의 경고가 아니라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골 1:13).

믿음은 위에서 나신 예수님을 알고(17:3) 그 아들게게 속하게 합니다(골 1:13).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땅이 하늘에 이르는 길입니다.

 

(26-28절)

예수님의 입술은 자의로 움직이지 않았고, 모든 말과 행위가 하늘의 뜻을 따랐습니다.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야 내가 그인 줄 알리라"는 말씀처럼,

십자가는 그분의 정체가 드러나는 자리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 것은 패배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한 아들의 영광이었습니다.  

 

(29절)

언제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조차 그분의 순종을 꺽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들을 결코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게하심이 주님 삶의 힘이었듯,

오늘 우리 삶 또한 그 임재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십니다.   

 

(22,25절)

유대인들은 "그가 자결하려는가?"라며 조롱했습니다.

말씀의 깊이를 알지 못하면 생명의 진리를 비웃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모든 인생이 주께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순간, 인생의 길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온 자", 곧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17:3)

 

위에서 나신 주님을 깊이 알게 하시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길로 걸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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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묵자흑, 근주자적 ]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초막절 중간 이후에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 논란이 계속됩니다.

논란의 주제는 예수님의 출신에 대한 것입니다.

갈릴리 시골 출신이라는 것이 유대인의 시각이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아버지에게서 났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고 위에서 난 자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구원의 도이기 때문입니다. 3:3절 말씀의 반복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3:3절에서 '거듭나지'의 문자적인 뜻은 '위에서 나지'입니다. 

헬라어로 ‘아노쎈’인데 ‘위에, 이전으로’의 뜻을 가진 ‘아노’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3:12, 22, 31절을 포함하여 3장 전체가 ‘하늘의’ 일, ‘위로부터의’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3절의 ‘위에서’는 ‘아노쎈’을 에크 토운 아노‘의 세 단어로 풀어서 표현한 형태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나는 것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수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씨를 받지 아니하면, 소속이 바뀌고 출신이 바뀌지 않으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21절과 23-24절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세상에 속한 채로는, 예수님과의 연합(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죄 가운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소속은 하나님(하늘, 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속함으로써(연합함으로써), 하늘의 씨를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속하게(연합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보내주시는 성령님을 모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연결된 자가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교제 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생명 가진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안에 새 영, 새 마음을 만들어내시는 구원입니다(겔 36:26-27). 

하나님의 구원, 하늘로부터의 구원, 위로부터의 구원, 물과 성령으로 나는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3:5-7]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위로부터 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생명의 동력입니다. 

교제의 핵심은 말씀을 듣는 것,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라는 4자성어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부르셔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힘쓰신 일이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막 3:14).

이런 의미에서 29절을 조금 다르게 번역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9절의 NIV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8:29] The one who sent me is with me, he has not left me alone, for I always do what pleases him.

‘for’로 번역된 헬라어 접속사는 ‘호티’인데,

because나 for로 번역되기도 합니다만 의미상으로 그렇고,

형식상으로는 영어의 ‘that’과 가장 가까운 접속사입니다.

그래서 29절을 이렇게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The one who sent me is with me, he has not left me alone, (so) that I always do what pleases him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그가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된다.]

‘호티’ 접속사를 ‘그래서’나 '그렇게', ‘so that’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예는

마 8:27, 요 7:35, 빌 2:16, 빌 4:16, 골 1:16절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29절을 이렇게 번역하는 것을 제안하는 또다른 근거는 

3장 이후부터 계속 이어진, 요한복음의 전체 문맥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시고 함께 해 주신다는 의미로 29절을 해석하면, 

오늘 본문의 문맥이 완전히 어긋나 버립니다.

또한 이는 복음(성경 전체의 문맥)의 진의에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임마누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이 앞서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순서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삼위일체로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실제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가시는 경륜에 (논리적으로) 앞서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29절의 영어 번역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현재보다 앞선 시제인 현재 완료로 표현되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는 사역은 현재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미 확립된 내재적 삼위일체가 시공간을 통해 경륜적 삼위일체로 나타나는 것이지, 

경륜적 삼위일체로 인해 내재적 삼위일체가 확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신 삼위일체이십니다. 

그분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진화(?) 중에 있는 신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 완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함으로써, 

그분의 완전한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주님,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 생명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안에 머물러 있도록 지켜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