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2.27. 금요일
요한복음 8장 31-41
- 진리가 주는 자유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자유에 관한 교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니라.
-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주장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버지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
우리는 진리가 참인 줄 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참된 것임을 믿는다.
참된 것 안에서는 떳떳하고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다.
무엇에 얶매이지 않는다. 불안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염려와 근심이 없다.
진리를 알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듣는 것이 진리인 줄 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믿지 아니하니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도 신뢰하지 않고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곧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무거운 굴레, 죄와 사망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죄와 사망을 깨뜨리신 것이 진정한 자유의 의미이다.
이 자유를 선포하시고 성취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 속에서
영적인 진리 앞에 육적인 이해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유대인들을 본다.
위로부터 거듭나지 아니하면 진리를 깨닫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이 진리를 깨닫고 믿게 된 것이 은혜이다.
이 진리를 믿는 자,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주님
이 진리를 믿고 참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지몽매한 저에게 이 진리를 깨닫고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 변치 않고 영원토록 이 진리 안에 거하게 해 주소서.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연합으로 나아가고 참 자유를 영원토록 누리게 해 주소서.
날마다 새벽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안에 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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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말 안에 거하면
진리를 알고 참된 자유를 얻게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혈통에 의지하여 참된 거부를 거부합니다.
(31-32절)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지만(8:30),
그들의 일시적인 정서적 동의를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옳게 여기는 것을 넘어, 지속하여 말씀 안에 '거하는' 제자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순종함으로 말씀안에 거할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힘입어 우리를 묵고 있던 두려움과 죄의 굴레에서 풀려납니다.
자유롭기 위한 하나님을 향한 투쟁은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만들지만,
순종을 위한 자기 부정의 투쟁은
죄와 심판, 어둠과 악과 사망에서의 자유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33-36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여전히 죄의 종이라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자유롭지만 죄의 욕망에 사로잡힌 삶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죄의 지배로부터 완전한 해방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는
혈통과 전통, 신앙의 연수와 직분과는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누리는 자유는
죄에서 해방되어 적극적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마음껏 실천하는 삶입니다.
(37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5:180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다"고 진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자녀를 빚으시기에,
말씀을 듣고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이 머물지 않는 마음은
결국 세상의 말에 자리를 내어 주고
세상의 문법을 따라 자기 삶을 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순종하게 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우리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는 말씀의 자리가 늘 마련되어 있습니까?
(38-41절)
참된 자녀는 아버지를 닮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주장했지만,
그들의 행위는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인 마귀(44절)가 부추기는 욕망을 닮았습니다.
믿음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됩니다.
우리도 믿음을 말로만 고백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약 2:18).
말씀 안에 거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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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 안에서의 자유 ]
찬송가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십니다(32절).
진리는 하나님 곧 예수님(아들, 36절)을 가리키는 것이고,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31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자유롭게 사는 삶을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죄는 우리에게 네 맘대로 하라고 부추깁니다.
마치 자유를 주는 듯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죄의 실상입니다.
내 맘대로 한 것 같은데, 사실은 찜찜하기 짝이 없는 불안한 마음이 되어버리고
급기야는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다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중독’이라고 말하는 상태입니다.
중독이 심해지게 되면
찜찜한 마음도 없어지고 벗어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아가 말살된 좀비 같은 존재가 됩니다. 완전한 노예 상태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매인 삶을 산 것 같은데, 억지로 끌려간 것 같은데,
마음이 한없이 자유롭고 평안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말씀에 순종하고 나면
그렇게 즐겁고 상쾌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진리라 하시며, 진리 안에 거하면(지속적으로 머무르면)
자유롭게 되리라고 하신 뜻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을 곧잘 씁니다.
그러나 이때의 ‘종’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강압에 얽매여 사는 존재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종’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강압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해 주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대하시지 않고, ‘아들’로 대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마땅히 주인으로 섬기며 공경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압해서라도
빨리 의로운 자로 만들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발휘해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자꾸 실패하고 넘어지고 바보같이 구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물론 훈련을 위한 일시적인 강압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지속적으로나 근본적으로는 강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유함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자유롭게 이끄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제하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믿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믿음은 단지 우리 자신의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과의 단단한 결속입니다.
나에게서만, 내 속에서만 일어나는 주관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객관적인 사건입니다.
계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결혼으로 비유되기도 하지요.
예수님과 결혼 관계에 들어간 것이 믿음 사건입니다.
이 믿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결혼 관계는 우리가 진리를 좋아하며 따르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시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우리와 결혼하신 예수님만큼은 온전히 신뢰하십니다.
예수님과의 결혼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강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십니다.
이 믿음,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단해지면 단단해질수록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자유롭게 대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영향력이 커지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진리가 확실히 자리 잡는 만큼
우리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일은, 자유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36절).
예수님과 결혼하지 않고서
단지 예수님을 존경하면서 닮아보려고
혼자서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를 닦고 수행을 합니다.
철저한 자기 통제와 극기 훈련을 통해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믿고 기다려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위태하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스스로 누구보다도 훌륭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지만,
그들은 결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먼저 그 안에 아브라함의 씨가 있어야 합니다.
그 씨를 싹틔우고 자라게 하여 열매를 맺는 것은 그다음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몰랐습니다.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39절)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한 것을 보면(41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이 곧 하나님의 자손을 뜻함을 이들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손은 하나님의 씨를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자칭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이들이
하나님의 씨, 하나님의 생명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그들에게, 그들의 욕심에 걸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나님의 씨는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기(31절의 '거하면'은 '지속적으로 머무르면'의 뜻) 원하는 자,
이 말씀을 계속 간직하며 사는 자가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거나 변질시키는 자들,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진리가 없으며 따라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유도 없습니다.
주님, 주님께 더 매이면 매일수록 더 자유하게 되는 이 진리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신 성령님,
죄에 대해 끊임없이 책망하셔서
죄가 충분히 불편하고 충분히 부자유스럽도록 만들어 주옵소서.
순종할 때 한없는 자유와 평안을 느끼도록
내 안에 진리를 채워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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