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 주일
요한복음 9:1-12
- 시각 장애인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가 그의 부모 이니이까
- 예수님의 대답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욀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 실로암에서이 치유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을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이웃들의 놀람과 논란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것을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자가 아니냐
어던 사람은 그 사람이라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 치유 과정에 대한 증언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제자들은 길에서 만난 맹인이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인지 묻는다.
그를 향한 측은지심도 없고 그를 위해 자비를 배풀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더불어 당신이 세상의 빛이며 빛이 있는 동안에는 낮이고 낮에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맹인을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보이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기신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초막절에 실로암에서 술을 긷어 성전에 붇던 전통을 상징하기 위해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신 것일까?
사람에게 침밭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모욕이다.
그런데 맹인은 묵묵히 침으로 이긴 진흙으로 눈에 바르는 모든 과정을 감내한다.
그리고 저자는 구지 실로암으로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한 내용을 언급한다.
맹인의 철저한 순종의 모습을 읽어야 한다.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 하자 그대로 순종한다.
그리고 눈을 뜨고 어떻게 눈을 떳는지 묻자,
아무런 첨삭도 없이 예수님이 하신 행동과 자신의 눈이 뜬 것만을 증언한다.
맹인은 자신이 눈을 뜬 사실을 알지만 주변 사람들은 반반이다.
복음을 전해도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가 있듯이 말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속함을 받아 영적으로 거듭한 것을
알아 보는 사람도 있고 못알아보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흙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흙으로 다시 맹인을 새롭게 하고 계신다.
'실로암을 보냄을 받았다'는 실로암에서 씻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심을 깨닫게 하려 함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제자들, 맹인,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보인 행동들을 묵상한다.
저자들이 그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묵상한다.
저자는 아무런 의미없이 글을 쓰지 않는다.
예수님도 아무런 생각없이 이런 행동을 하시지 않으셨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단지 또 하나의 기적으로 취급하고 만다.
주님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 우리의 눈 먼 것을 뜨게 하신 주님
이 땅에서 빛의 자녀로 살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소서.
제자들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일,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도록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옵소서.
주님은 창조주시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믿습니다
나를 새롭게 하셔서 맹인이 눈을 뜨듯 영생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게 인도하여 주소서.
맹인처럼 나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와 주님을 만난 경험들을 나누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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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밤에서 영광의 낮으로 ]
예수님은 날 때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의 고통을
죄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회로 재해석하시며,
그에게 어둠을 몰아내고 참된 빛을 주십니다.
( 1-3절)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두고,
제자들은 과거의 죄에 대한 징벌로 이해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기회로 재해석하십니다.
인간의 고통을 단순한 인과로 환원하지 않으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일에 주목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위해 사람을 고난으로 몰아넣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까닭 없이 닥친 불행 속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주권이 있다는말입니다.
삶의 결핍이나 고통 앞에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라고 자책하기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가?'를 탐색합시다.
( 4-5절)
시각장애인의 불행을 관망하며 논평하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할 수 없는 때가 오기 전,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지금 세상의 어둠을 밝혀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예수님이 부르신 '세상의 빛'입니다(마 5:14).
세상이 어둡다고 한탄하거나 비난하는 데 머물지 말고,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작은 촛불이라도 켜야 하지 않을까요?
(6-7절)
말씀으로 치유하실 수 있음에도,
굳이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보냄을 받았다'는 뜻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전적인 순종을 그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은 신뢰로 반응했고, 순종은 그에게 빛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에 순종했기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이자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신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내 이해를 넘어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주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이를 것입니다.
(8-12절)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보게 되자 이웃들은그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놀랍니다.
그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묻자,
그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단순하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복잡하고 심오한 논증이 아니어도,
경험한 은혜 자체가 강력한 증언이 됩니다.
언변이 좋아야만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신 변화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주님이 빛으로 제 삶에 찾아오셨으니, 주님과 함께 세상의 어둠을 밝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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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죄병 치료법 ]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자를 보며,
그가 맹인된 것이 부모의 죄 때문이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 맹인을 고쳐주시는데, 다른 곳에서와 달리 조금 특이하게 고쳐주십니다.
말씀으로 명하시거나 안수하셔서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의료 행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고쳐주십니다.
진흙을 바르신 다음 못에 가서 씻게 하심으로 고쳐 주십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민간요법을 사용하여 병자를 치료하신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을 고쳐주시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시는 일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병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법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고치면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자신이 마귀의 자식임을 직시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실물 교육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와 교만이
우리로 하여금 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죄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과 열심이 아닙니다.
죄인에게 빛을 비추어 죄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피에 씻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암은 우리의 죄와 비슷한 점이 많은 병입니다.
암은 병이 상당히 진척되기 전에는 그 증상을 자각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암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마침내 암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췌장암이 그렇다고 하지요.
죄병에 걸린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망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 상태를 죄로 인해 죽은 상태라고 합니다.
죽은 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병에 걸린 상태임을,
우리가 어둠에 있음을,
우리가 더러운 상태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시는 가장 기초적인 구원 사역입니다.
맹인이라 할지라도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눈에 덕지덕지 붙여 놓으면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맹인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진흙을 씻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셔서
우리가 죄인이요 어둠인 것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대신해서 죽어야 용서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죄임을 확인해 주십니다.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데도 죄 문제의 해결에 나서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의로운 자라는 평판을 절대 포기할 수 없어서,
죄인인 것을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참 어리석은 해결책을 취했던 인간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문제 자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들춰내는 빛을, 죄를 부각시키는 의를 없애버림으로써
문제를 덮어버리려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성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해서 찾아오셔서 빛을 비추십니다.
심지어는 더러운 진흙을 이겨 우리에게 발라 버리십니다.
더럽다는 것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문제 있는 것 직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움직이게 만드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만드십니다.
설사 예수님은 믿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더러운 진흙을 씻기 위해서 실로암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십니다.
어쩔 수 없이 주님께 나아오게 만드십니다.
덮어버리거나 외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께 나와서,
주님께 순종함으로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셔서 믿음을 갖게 해 주십니다.
죄는 꽤 끈질깁니다. 그 가닥도 한두 가닥이 아닙니다.
그래서 칼로 무 자르듯이 한칼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찾아오셔서 빛을 비추십니다.
죄인인 것, 아직도 깊은 곳에 더러운 찌꺼기가 남아 있다는 것,
잊어버리지 않도록 들춰내고 폭로하십니다.
죄를 직시하게 만드십니다.
무지한 상태에 있지 않게, 교만 방자하지 않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러운 침을 뱉어 이긴 진흙을 눈에 발라서,
씻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 계속해서 죄를 폭로하여 주시고 지적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나아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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