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겸손과 평화의 왕을 영접하라!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3. 12. 06:58

2026.3.12. 목요일

요한복음 12:12-19

 

- 큰 무리의 환호와 영접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 제자들의 뒤늦은 깨달음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 무리가 에수님을 영접한 이유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 바리새인들의 탄식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다.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이스라엘의 왕을 영접한다.

제자들은 이 당황스런 상황들을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이해한다.  

많은 무리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를 영접하고 따르자,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계획들이 무용지물을 깨닫고 탄식한다.

 

종려나무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지만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주님을 보고 

무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희고 큰 백마를 타지 않으셔서 실망했을까? 

기대와 흥분 속에서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은 초라해 보인다.

수많은 병사들은 보이지 않고 초라한 행색의 소수의 제자들만이 뒤따라 걷고 있다.

갑작스런 이런 상황에 제자들도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왕을 제대로 알아 보지고 못하고 있기는 무리나 제자들이나 일반이다.

 

내가 믿고 따르는 분은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다.

힘과 권력으로 지배하고 통치하러 오신 영웅이 아시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정치적 해방자의 모습은 아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해야 한다.

오늘 이 새벽에 주시는 말씀 속에서 난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을 바르게 알기 원한다.

  

죽은 나사라가 살아났다는 소문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삽시간에 예루살렘에 쫙 퍼졌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 표적의 현장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광고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것, 곧 입 소문이라 한다.

복음은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 전해진 것이다.

나 또한 입을 열어 십자가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생명을 전하리라.

 

주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그 환영 인파 속에,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하는 자리에 내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도 마음 중심에 모셔 드립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기쁘게 환영하고 영접하며 즐거워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는 충만한 기쁨으로 살겠습니다.

입을 열어 겸손하게 평화의 왕으로 오신 구원자 예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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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한 왕의 입성 ]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 자신이 겸손의 왕임을 선포하십니다.

 

(14-15절)

예수님은 군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십니다. 

이는 스가랴 9:9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으로,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전쟁의 왕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러 오신 겸손과 평화의 왕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낮아짐과 온유함'으로 

왕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도 세상의 방식으로 강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19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온 세상의 주로 삼아,

바리새인들이 내뱉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사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적대감과 방해를 뚫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12-13절)

'종려나무'는 승리와 민족주의의 상징이고,

무리가 외친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와 '이스라엘 왕'이라는 호칭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해 줄 강력한 정치적 메시아를 향한 갈망이 담긴 말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의 구주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강력한 영웅을 원했습니다.

무리의 환호는 뜨거웠으나 방향이 틀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실망하고 등을 돌리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16절) 

제자들은 이 일의 의미를 예수님의 부활 후에야 알았습니다.

우리도 현재의 사건 속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고 말씀 안에서 되돌아볼 때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17-18절)

무리가 이토록 열광적인 이유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고 생긴 믿음은 기적이 사라지거나 고난이 닥치면 안개처럼 흩어집니다.

며칠 후 이 "호산나"의 함성"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광기 어린 외침으로 바뀔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에 내려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겸손한 왕으로 오신 주님을 순종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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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끼 나귀를 타신 왕 ]
찬송가 448장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십니다. 영광을 향하여 가십니다.

그러나 군중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거꾸로 보며

한편으로는 환호하고, 한편으로는 낙담합니다.

왕의 길을 가시면서 나귀를 타십니다. 

그냥 나귀가 아니고 새끼 나귀입니다.

‘한 어린 나귀를 보고’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직접적인 의미는 ‘조사, 관찰에 의해 발견하다’입니다.

'보고' 보다는 '찾아내어'가 더 적절한  번역입니다.

그냥 지나가다 눈에 띈 나귀를 타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공관복음의 이 장면을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우연히 길 가에서 발견해서 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보내어 데려오게 하셨습니다. 미리 준비된 나귀입니다. 

떠돌아 다니는 나귀가 아니고 임자가 있는 나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신 것은 매우 의도적이고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전쟁과 힘을 상징하는 말을 타시지 않으셨습니다. 

짐을 운반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는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것도 새끼 나귀를 타셨습니다. 

왕으로 보내심을 받으셨지만, 섬기는 왕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아버지 왕의 명을 받아 섬기는 아들 왕이심을 확실히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 아들 관계를 사람의 부자 관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우월과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논리적인 선후 관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시는 만왕의 왕은 이처럼 자신을 낮추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아들로, 심지어는 종으로 자신을 낮추십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소멸의 죽음이 아니라 겸비함의 죽음, 자기 부인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왕을, 십자가 지는 왕을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높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시고 ... 

이것이 진정한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군림하는 왕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은 환호했고, 바리새인들은 낙담했습니다. 

나중에 이 왕의 진실한 모습을 확인하였을 때, 양쪽의 태도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군중들은 낙담하다 못해 증오했고, 바리새인들은 안심하며 환호했습니다.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에 ‘이게 뭔 일이지?’하며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나중에서야 이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중들은 알지도 못하고 오해하며 소리 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군중들의 입을 통해 

새끼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왕으로, 진정한 왕으로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내 것으로 질 수 있을까요? 

정말 온전한 믿음으로, 짐을 서로 지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영광을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허락된 진정한 영광은 이 십자가의 영광인데, 

다른 영광을 아직도 부러워하고 있는 미련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게 주시는 영광이 섬기는 영광밖에 없는 것에 낙담한 것에서 

아직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여 가치관을 바꾸는 빛을 더욱 환하게 비춰 주옵소서. 

섬기며 즐거워하는 왕의 영광을 내게도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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