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옥중서신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11. 12. 11:27

본문 : 디모데후서 1장 1-8절

 

만약 내가 옥중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무슨 내용을 적을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언같은 말을 적을텐데

수많은 말들 중에서 무슨 말을 꼭 전하고 싶을까?

 

오늘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 서신을 쓰고 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고백한다.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인이 예수님이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고백이다.

또 바울에게는 죽음이 훼손할 수 없는 생명의 약속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것을 믿기에 투옥을 부끄러워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복음을 전했다.

그야말로 소망에 붙들린, 약속을 붙잡은 인생이다. 

 

살면서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의 고백을 할 자신이 있는가 자문해본다.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혹독한 시련과 핍박 앞에서도, 순교의 현장에서도 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자신감은 떨어지고 목소리는 작아지고 만다.

나의 힘으로, 믿음으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과 능력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그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다른 서신에는 잘 띄지 않는 인사말에 '긍휼'이 들어가 있음에

감옥에 있는 바울과 믿음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어 힘들어하는 디모데를 향한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감옥에서도 청결한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밤낮 쉬지 않고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자신을 향한 디모데의 눈물과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하고 감사했다.

내 영혼이 잘 보존되고 은사가 잘 쓰임받도록 이토록 기억하면서 기도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나의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지체는 누구일까?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의 동역자, 동지가 필요하다.

믿음의 멘토, 멘티가 필요하다. 

 

장로로 사역하면서 가끔은 이런 푸념을 한다.

장로직은 끝없이 퍼주는 위치라고 말이다.

누군가로 부터 위로와 격려, 기도의 응원을 받기 보다는

누군가를 돌보고 격려하며 기도하고 섬겨야만 하는 자리이기에 그렇다.

그런면에서 지치고 탈진하며 신앙의 위기를 만나기도 하는 것 같다. 

장로도 때로는 위로가 필요한 자리이다. 

 

거짓 없는 믿음은 복음의 열매이자 복음의 통로가 된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거짓 교사들의 위선과 달랐고, 바울의 청결한 양심과 닮았다.

그것은 겉으로는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져버릴 가변적 믿음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형성된 믿음이고,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이다.

그들은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고, 삶으로 번역된 말씀을 몸소 보여주었을 것이다.

자녀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열의 만큼이나 신앙교육에 힘쓰고 있는가?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 일 듯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의 각성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이신 성령께서 다시 역사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 마음(영)이라면 복음을 전하다가 갇힌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령이 주신 마음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거짓 없는 믿음, 청결한 양심, 복음 전도의 사명을 지켜내게 하소서. 

 

디모데는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다가 ]

감옥에 갇힌 바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바울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 결과가 이거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일을 해 낼수 있을까? 

내가 전하는 복음이 정말 맞는 것인가?

왜 복음을 전하는데 죽어야만 한단 말인가?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데

왜 하나님은 바울을 죽게 나두시는가? 

수많은 질문과 의문과 두려움이 밀려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의 명령처럼 다가온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고난은 필수적이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고난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영적 전투에 어찌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겠는가?

기억해야 한다.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