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여호와를 알자
본문 : 호세아 6:1-11
호세아의 참회의 노래를 부른다.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게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는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5,6장의 일관된 심판의 메시지 사이에, 호세아가 부르는 회개의 노래가 자리잡고 있다.
호세아를 비롯한 여러 선지서에서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가 교차하는 것은,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이 백성의 회복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사자처럼 찢으신 백성이 심판을 통과하여 그분께 돌이키면
낫게 하시고 싸매어주시는 분이다.
소생케 하시고 일으켜 세우셔서, 살리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다.
얼굴을 감추신 것 같지만, 기나긴 어둠 끝에 밝아 오는 빛,
오래 매말랐던 땅을 비로소 적시는 단비처럼
결국에는 돌아오실 분이다(5:15).
호세아는 백성을 향해 '여호와를 알자'고 촉구한다.
호세아서에서 '앎'이란 내면의 성찰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인 공평과 정의와 진실과 인애를
내 삶의 구체적이이고 실질적인 현실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제사보다 인애를,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삼상 15:22)
인애(히, 헤세드, 포기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일상에서 타인에게 인애를 베푸는지 여부로 '앎'의 유무를 판단하신다.
삶 속의 인애는 아침 구름과 이슬같이 쇠잔한데
겉으로 아무리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예배를 드려봤자,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으실 것이다.
마음껏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인애 덕분에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용서,
탐욕일지라도 하나님의 인애 덕분에 마술처럼 주어지는 풍요는,
바알 신앙에서 차용한 '조종되는 하나님' 개념일 뿐이다.
내 삶에 주님의 인애를 담지 않는 한
그 어떤 경배도 바알 숭배와 다를 바 없다.
이스라엘에 만연한 죄악을 심판하시는 추수를 시행하실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길르앗과 세겜은
강자들이 약자들을 약탈하고 학대하는, 폭력이 만연한 성읍이 되었다.
남유다에도 짓밟히고 억눌린 백성이 가득하다.
이웃을 피 흘리게 해놓고 경건한 얼굴로 성전에 나아가 제물의 피를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결코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더는 피할 데 없어서 모인 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공동체로 세워져가고 있는가?
종교적인 겉모습으로 인애 없는 삶을 감추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