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신비, 희망의 탄생
- 매일 성경에서 옮김
'다시 연결됨'에 대한 갈망
홀로코스트에서살아남은 자의 기록인 엘리 위젤(Elie Weisel)의 [나이트]는
인간의 가혹한 '밤' 경험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밤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은 숙연한 마음으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직시하게 합니다.
코로나19의 무거움과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지금,
그것과 똑같지는 않아도 어두운 밤을 걷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눈앞에 무엇이 다가올지, 새벽이 언제 밝아올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밤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밤'은 다양한 상황과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밤은 때로 빛과 반대되는 흑암이나 어두움과 동일시됩니다(시 139:12).
그래서 어두움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요일 2:11) 빛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거나
하나님과 대적하는 상징(살전 5:5)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밤도 공포(시 91:5)와 두려움, 정신적인 혼란(시 6:6)이나 고통과 괴로움(욥 7:3,4)을 묘사할 때 쓰입니다.
그래서 밤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경에서의 밤은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나 직접적으로 계시를 주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은 아이 때에 밤에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삼상 3장),
솔로몬도 성전 낙성식을 마친 후 밤에 나타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대하 7:11-12).
또한 밤은 낮 동안의 일을 멈추고 안식을 취하거나 영성을 훈련하는 시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기도하거나 묵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하고(시 63:6, 119:55,147),
다음 날의 전쟁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수 8:3, 삿 9:34).
이렇듯 성경 속의 밤은 영적인 의미,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 과정에 거쳐야 하는 밤
성경에 나타난 밤의 상징 가운데는 영적 성장을 위한 밤이 있습니다.
얍복강에서 밤새껏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의 밤이 대표적입니다(창 32장).
야곱은 자신의 속임수로 장자권을 잃고 분노로 가득 찬 형을 피해 도망했다가
20년 만에 그 형을 다시 대면해야 하는 두려운 밤을 맞게 되었습니다.
일생 중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밤에 처절할 만큼 고독했을 야곱이
마주한 생면부지의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성서와 함께 하는 밤에 대한 묵상]은 야곱의 투쟁이 기도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도는 성취를 위한 기도, 복을 받기 위한 기도로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결국 존재가 변화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분,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던 그 장소를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명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을 표현하는 가장 간절한 말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원합니다"입니다.
그러니 '브니엘'은 그 갈망이 이루어진 야곱의 진심이 담긴 신앙고백입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습니다.
'발꿈치를 잡은 자'였던 야곱이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전과 다르게 사는 변화된 존재가 되었다는 상징입니다.
존재가 변화되었다는 가시적 표현으로 야곱은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습니다.(창 32:31).
하나님과 투쟁하던 밤, 기도의 밤이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아침의 희망이 솟아오른 것입니다.
밤은 낮 동안 잊어버렸던 존재, 나의 힘으로 살 수 있을 것처럼 자신했던 시간에
밀쳐 두었던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밤은 기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특권임을 일깨워줍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의 시간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밤을 세워 하나님과 씨름할 만큼 끈질겼던 야곱을 생각하면서
기도가 투쟁이라고 불릴 만큼 절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그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고,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존재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 생활에서 경험하는 밤
영적 성장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들도 밤을 경험합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가듯, 영적 성장에도 자라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 성장통 같은 과정입니다.
이것은 아이를 혼자 걷게 하려고 어머니가 품에서 내려놓는 것에 비유됩니다.
처음에는 두렵고 막막하겠지만 성장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정신의학자이자 영성 지도자인 제랄드 메이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영성가들의 저술에 나타난 어두운 밤 경험을 현대적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여 안내합니다.
제랄드 메이는 영성 생활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나타내는 세 가지 표지를 제시합니다.
먼저, 이전과 달리 기도와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그리고 이전에 하던 방식에 대한 욕구가 부족해집니다. 그러니 기도하려는 동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활동에 대한 욕구 없이 고요함과 내적 평화 가운데 머물러 있으려고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단순한 갈망에,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홀로 있고 싶은 마음만 가득합니다.
이 세 번째가 어두운 밤의 가장 확실한 특징입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있고 싶다는 영적 성장의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어두운 밤은 '정화의 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제랄드 메이는 이 과정을 중독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들어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함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 자체로 '사랑'하고 싶은 욕구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집착했던 것들이 시들해지고, 열정을 다했던 일들에 더 이상 욕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과거와 같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노력은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두운 밤이라는 이미지가 적절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변화의 원동력은 하나님이고 , 변화를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을 갈망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희망을 품고 믿음으로 어두운 밤을 걸어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은 하나님을 희망으로 삼고, 믿음으로 걷는 길입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영성 생활의 목적인 하나님과의 사랑을 더욱 깊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달콤함이 사라지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눅5:4),
더 깊은 묵상을 사모하며 나아가라는 주님의 초대입니다.
밤과 희망
밤은 어둡고 춥숩니다. 빛은 밝고 따뜻합니다.
어두운 밤을 걷고 있을 때라도 빛이 있다면 덜 어둡고 덜 춥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절망 가운데도 희망이 있다면
우리의 존재를 해소하게 만드는 두려운 밤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의지하여 아기 예수를 찾아낸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그 상징입니다.
성공회 사제이자 영성 교사이며 작가인 신시아 부조(Cynthia, Bougeault)는 [희망의 신비]에서
희망이야말로 "우리 삶의 핵심"이며 "살아 있는 존재의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살아 있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현재를 지탱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미래에 이뤄질 좋은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망이 밖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시아 부조는 이 힘이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희망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이 나온다는 믿음은 하나님의 자비로운(merciful) 사랑에 근거합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연결된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희망의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은 사람의 얼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희망입니다. 성탄절은 희망이 새로 시작되는 날입니다.
또한 밤은 사람들이 희망을 볼 수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들판에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경배드린 목자들의 이야기도 밤에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일상의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무서워 말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