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아이성 전투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1. 9. 10:01

본문 : 여호수아 7장 1-26절

 

난공불락으로 생각하던 여리고성을 함락시키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위기를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이고 누구도 무섭거나 겁나지 않고

다 처부술 수 있다고 자신만만 해 하지 안했을까? 

 

여리고를 공격할 때와 아이성을 공격할 때는 분위기나 자세가 사뭇 다르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고, 전략도 없다. 단지 자신감 하나만 보인다.

전쟁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작은 성 아이성을 쉽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60만 장정 중에 3천명만 올라가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날 공격에 30명이 죽고 도망쳐 온 것이다.

백성의 사기는 곤두박질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 그 분위기와 사기와 상태를 가늠할 수 있어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만나야,

그제사 기도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문제 원인을 생각한다.

여호수아가 탄식하며 하나님께 토로하자,하나님이 설명해 주신다.

온전히 성결하지 못한 상태로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리고성 전투에서 노획물을 온전히 하나님께 버쳐라고 했지만 아간이 훔쳤다.

견물생심이다. 인간의 욕심이, 탐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성결하게 하고 전투를 치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에덴 동산의 하와, 사울 왕의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시 취한 노획물들,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떠오른다.

완전범죄는 없다. 모든 죄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감출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온전한 헌신, 온전한 순종, 온전한 믿음, 온전한 충성을 요구하신다.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우리는 죄인이라,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신다.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훔쳐 장막에 숨겨 놓았다. 

결국 범죄가 드러나고 아간과 그의 가족과 모든 소유를 불로 태우고 돌로 처 죽이고 만다.

아간이 돌로 처 죽임 당한 아골(고통) 골짜기는 두고두고 찬송가 가사에서 불려진다.

아간과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의 고통이다.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은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간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나니와 삽비라 사건도 베드로의 설교로 교회가 불같이 일어나던 시점에 발생했다.

교회의 기초를 흔드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보신 것일까?

일벌백계의 느낌이 든다. 

두 사건 다 상황이 좋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여러가지로 잘 돌아가면 그래 그 정도는 괜찮아 하고 선심을 쓸 때가 종종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함은 결코 인간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름을 새삼 느끼는 아침이다.

 

-----------(메일 성경에서 옮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식하며 묻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군가 온전히 바친 물건을 도둑질함으로 언약을 어겼기 때문임을 알려주시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신다.

삶에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닥칠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해답은 하나님에게 있다.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지시도 없이 아이성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엿다.

정탐군을 보내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도 하나님이 빠져 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렸다면, 뼈아픈 패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물었다면, 자기 죄를 깨달았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래야 안전하다.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빼돌리자, 여리고 전쟁 때의 상황과 정반대가 되었다.

아이성을 치겠다고 올라갔지만 아이의 군대가 그들을 쳤다.

지금까지 가나안 민족의 마음이 녹았지만 , 이제 이스라엘의 마음이 무너졌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경고,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칼이 이스라엘을 향한다는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여호수아는 요단 강물을 끊으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이

왜 갑자기 이스라엘을 내치셨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하나님이 언약을 배반하신 것 같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신실하신데 '아간의 범죄'를 모르니 변덕스러운 분으로 느낀 것이다.

하나님이 의심스럽다면 자기 자신을 의심해야 할 순간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 아니라 자기의 숨은 죄부터 정복해야 했다.

원수와 맞서는 것보다 자기 죄를 없애는 게  먼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우리와 동행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바깥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자,

사역보다 성결이 우선이다.

 

죄의 파괴력과 파급력을 기억하며 작은 죄라도 물리치게 하소서.

 

아간은 여리고성에서 훔친 물건을 완벽하게 '감추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무도 아간의 죄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감춘 물건을 꺼내시고 그의 죄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들춰내셨다.

하나님은 숨은 죄를 아신다. 그리고 반드시 그 죄를 짚으신다.

 

아간의 죄는 개인과 가정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를 괴롭게 했다.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패했을뿐만 아니라 

죄인을 색출하고 형제를 처벌해야 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나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죄의 유혹을 이겨내자.

또한 다른 지체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돌아보자.

 

아간은 자기 죄를 자백하면서, '보고', '탐내어', '가졌다'고 말한다.

아간의 죄는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니', '탐스러워서', 그 열매를 '따 먹은 ' 사건의 반복이다.

탐심은 우리를 죄로 이끈다. 탐심이 자리하면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 탐스럽게 보인다.

많은 사람이 탐심을 이기지 못해 죄에 빠진다.

하지만 예수님께 속한 우리는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갈 5:24).

그 대신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는 사람들이다.

 

여호와께 바친 물건을 훔친 아간과 그것을 묵인하고 방조한 가족들이 '바치는 것'이 되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말씀을 범한 데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었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출범하자마자 성령과 신앙 공동체를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음으로 죄값을 받은 것과 같다(행 5;1-11).

이는 라합과 그의 가족이 '여호와께 바쳐지는 여리고의 운명'에서 구원받은 것과 대조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한 라합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하여 죄와 탐심을 물리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