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요단 동편 땅의 분배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1. 21. 09:59

본문 : 여호수아 13장 15-33절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가족을 따라서 기업을 받았다.

가족이 많은 지파는 많이, 적은 지파는 적게 받았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 수 있도록 땅이 골고루 분배되었다.

누군가 땅을 빼앗기고 자기 기업을 잃어버려서

삶이 궁핍하고 고통스러워지는 일이 생긴다면

땅을 주신 하나님의 본의를 거스리는 일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선물하신 좋은 것들을 향유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입으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늘 공평함에 불만이 많다. 

이기적인 인간의 눈으로 보는 공평함은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달라

진정 공평함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는다.

솔직히 나 또한 공평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공평을 모든 것이 각 개인에게 균등하고 동일하게 주어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같은 조건, 같은 능력,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며

살아가면서도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공평이라고 한다면 공평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공평함에 만족하지 못하여 늘 갈등과 다툼과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공평함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할 때도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살아가기가 싶지는 않다. 

출발부터 다름과 차이에 불만과 불평은 시작되고,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만족하지 못하여 불평하며 살아간다. 

숙명으로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평등, 정의의 개념도 싶지 않다.

성령님 지혜를 주셔서 공평하신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 미디안 귀족들과 점술가 발람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들을 심판하고 가나안에 거주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들과 같은 행동을 취한다면 그들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는

말세의 불경건함'(딤후 3:1-5)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과연 나는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는가?

말씀 묵상과 기도와 예배가 구별의 전부인가? 

생각과 삶의 모습에서 구별된 나의 모습은 무엇이 있는가?

구별되고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설교를 통해 듣고 요구받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구별됨의 차이가 나타나는가?  

 

레위 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신 대신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레위 지파는 누구보다 삶의 기반이 넉넉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레위 지파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이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최고의 기업이신 하나님을 보장받았으니, 그보다 더 좋은 복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그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은 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살면서

나머지 지파에게 하나님이 최고의 소유이고 선물임을 보여주는 역할도 부여받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다(창 15:1).

주님과 비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배설물에 불과하다(빌 3:8).

하나님이 언약을 맺어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언약 안에서 그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누리자.

그리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인생의 복을 세상에 보여주자.

 

우리는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한다고 노래한다.

과연 실제 삶 속에서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는가?

당장 내 앞에 들어닥친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 온전히 자유할 수 있는가?

이론과 실재 앞에서 우리는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문제에 함몰되어 버리곤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비가시적인 복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며 살지만

현실적, 가시적, 세상적 복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인지라 마음도 믿음도 흔들릴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은 유한하고 짧다.

영원한 천국의 삶을 소망하고 우리가 누릴 참 복을 기대하면서 인내하고 견디어내야 한다.

복에 대한 개념과 믿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오늘 아침 묵상에 마음이 무겁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지식만 있고 결단과 실천이 부족함 때문에 힘들어 한다.

나의 믿음 부족함으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아침 출근 길에 미세 먼지 등으로 아침 태양이 붉게 차창으로 다가왔었다.

몸의 불편함과 더불어 마음의 불편함이 맑지 못하고 명료하지 못하다. 

성령이여 도와주소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활기차게 시작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영원한 기업이 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순결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