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2. 4. 10:10

본문 : 여호수아 22장 21-34절

 

요단 동쪽 세 지파가 먼 훗날 후손들이 여호와의 언약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증거로 삼기 위해 세운 제단이 문제가 되어

요단 서쪽 지파 대표들이 진상을 파악하러 찾아왔다.

세 지파들은 전능하신 자 하나님의 이름을 두 번이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진실을 아신다고 말하며 진의를 소상히 설명한다.

이에 서쪽 대표들은 그들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 들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돌아갔다.

 

동쪽 지파와 서쪽 지파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

동쪽 지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후손들이

서로를 한 공동체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생길까봐 염려했다. 

동쪽 지파는 후손들에게도 서쪽 지파와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막 앞에서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하는 제단과 똑같은 제단을 쌓아

제사는 드리지 않고 오직 증거가 되게 했다.

서쪽 지파는 이런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동쪽 지파의 행동을 우상숭배로 오해했다.

그럼에도 동쪽 지파는 서운해 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오해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진솔하게 진의를 설명했다. 

그 결과 피어오르던 전쟁의 불씨가 사그라졌다.

혹시 오해를 받더라도 서운한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진실한 대화로 오해를 풀어야 한다.

오해를 바로잡는 해명이 공동체를 분열의 위험에서 건진다.

 

요단강 동족 지파가 모형 제단을 쌓은 이유는

요단강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단절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와 서쪽 지파와의 형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자매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유지되는 친밀함은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조금씩 멀어진다.

나는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요단강 동편 지파의 진심을 담은 해명에 서편 지파가 안도하며 기뻐한다.

자신들의 판단이 오해로 밝혀져도 다행이었고,

분노하며 꾸짖은 것이 멋쩍은 일이 되어도 기뻤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진실한 사랑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가 아니면, 한 몸이라는 연대의식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내가 틀렸음이 드러나도 형제자매의 믿음이 건강하다는 것에 기뻐할 수 있는가?

형제자매가 진리 안에 있음을 기뻐한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요삼 1:1-4).

 

르우벤,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함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강은 심리적으로 단절을 생각나게 한다.

동쪽 지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요단강을 건널 때 아마도 이런 마음이 들었던가 보다.

이제 이렇게 헤어지면 이스라엘 남은 지파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고

그들이 섬기던 하나님의 성막도 서쪽에 있어 자신들과 후손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던가 보다.

사람은 자주 만나지 않으면 친밀함도 떨어지고 관심에서 멀어진다.

지리적인 한계가 만남의 장애가 되면 더더욱 그렇다.

동쪽 지파들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가 성막의 제단과 같은 상징적인 제단을 쌓아

같은 신앙을 가진 동족임을 확인받고 싶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쏱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관계가 저절로 그리고 그대로 유지되는 법은 없다.

수년이 지나도 문자 한 번 주고받지 못한 관계가 많았다.

지금이라도 안부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두번째로는 오해를 풀어가는 방법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관계 속에서 수많은 오해와 갈등이 빚어진다.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나 말이 오해를 살 때도 종종 있다.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해법은 정직하게 진의를 설명하는 것이다. 

진의를 숨기려 할 때 ,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때 오해는 증폭되고 확대된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사람은 영물이다. 말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아 본다. 

문제는 항상 정직하게 행동하고 말하면 오해를 살 일은 줄어들고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