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나로 강하게
본문 : 역대상 7장 1절-8장 40절
이스라엘 12자파의 족보 이야기는 계속된다.
7장에서는 북이스라엘에 속했던 지파들의 계보가 소개되고,
8장에서는 사울왕이 속한 베냐민 지파의 계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새벽 기도회 시간에는 에브라임 지파의 이야기였다.
본문 묵상이 필요하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애굽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가드 원주민과 전투에서 죽는다.
이로 인하여 에브라임은 많이 슬프고 상심하였다.
재앙을 받은 이 집에 얼마 후 브리아가 태어나고 계보가 이어지며,
딸 세에라는 벧호론과 우센세에라를 건설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태어난다.
인간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끝이 아니다.
멀리서 인생을 바라보면 전 인생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것이 인생 아니던가....
지나치게 가슴 아파하며, 지나치게 절망하며, 삶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그 모든 일들은 시간과 함께 세월의 뒤안길로 흘러간다.
역사의 주관자되신 주님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자.
절망 중에 태어난 브리아를 통해 구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호수아가 태어났다.
족보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주님 오실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나 또한 주님 안에서 영생을 소망하며 오늘도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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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를 통해 일하신다. 므낫세 자손의 슬로브핫은 딸들만 낳았다.
아들이 끊긴 것을 저주로 여기던 때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지혜롭게 행동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지켰다.
또 에브라임의 딸 세에라는 남자들도 해내기 어려운 성읍들을 건설하여 가문의 계보에 당당히 족적을 남겼다.
족보에서 여성이 언급되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그만큼 그들의 업적은 탁월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신다.
약한 나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가?
현실 너머의 가능성을 보신다.
사사 시대에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에서 일으킨 죄로 멸절되다시피 하였지만
그 후손들은 번창하여 포로귀환 이후에는 유다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대표하면서 이스라엘 재건에 큰 공을 세웠다.
현실적으로는 어림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현실을 넘어 일하신다.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힘은 하나님께 있다.
잇사갈 자손은 대대로 용사였다. 힘으로 당할 수 없는 용맹한 자들로, 숫자도 막강했다.
베냐민 지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라가 멸망할 당시 이들은 비참하게 흩어져 무기력한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까닭이다.
용사였던 삼손도 하나님을 떠나면 연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진정으로 강할 수 있다.
순종이 사는 길이다.
역사적으로 패망한 왕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불레셋에 의해 패망하였음에도 그 가문은 계속 이어져 번성하엿다.
이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복된 삶의 비결이다.
오늘도 성공보다 순종의 길로 가기를 소망한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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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자들의 족보 ]
역대기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윗 왕가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각 지파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유다와 그 속에 포함된 시므온 지파의 족보가 가장 먼저 나오고,
요단 동편 지파의 족보, 레위 지파의 족보가 이어서 기록됩니다.
7장은 열두 지파 중 나머지 지파(잇사갈, 베냐민,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아셀)의 족보가 한꺼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장에 와서도 여전히 계보가 나타나지 않거나 계보가 단 한 줄로 그치는 지파가 있습니다.
스불론 지파와 빌하의 아들 지파인 단, 납달리 지파입니다.
8장은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의 베냐민 지파의 계보를 다시 한번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사울 왕의 족보는 9장 35-44절에서 다시 한번 더욱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유다왕국(다윗 왕가)의 이야기인 역대기가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시작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냐민의 족보는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들의 족보와 기브온에 거주한 자들의 족보입니다.
사울왕은 기브온에 거주한 자들의 족보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족보의 중심이 다윗 왕가인 점, 어떤 족보는 빠져 있거나 짧게 처리되는 점,
족보를 예루살렘 거주 여부로 분류한 점 등을 통해 우리가 추론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역대기의 족보는 바벨론 포로에서 성전이 있는 왕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윗왕국을 재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족보라는 점입니다.
왕도 예루살렘은 본래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습니다(수 18:28).
그러나 그들은 험난하다는 이유로 예루살렘을 공략하지 않고 주로 기브온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왕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 곳에 성전을 세운 지파는 다윗의 유다 지파였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로
베냐민 지파는 왕국의 중심이 될 기회를 다윗 지파에게 내어주고 만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금 왕국을 재건할 기회와 역할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왕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새롭게 주어진 기회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지파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소극적이거나 회피하는(불순종하는) 지파가 있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지파가 스불론, 단, 납달리 지파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오기를 거부하였거나, 왕도 재건을 위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 중 일부도 그러했습니다.
명목상의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 땅의 교회에 적을 두고 이름을 올려놓았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족보에도 저절로 이름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롬 9:6-7] 6.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권고하심에 힘입어,
포로 된 자리에서 왕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순종의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의 족보에 기록됩니다.
새로운 자리, 높은 자리 찾아서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 이미 맡기신 역할, 그것을 순종으로 잘 감당하는 자가 왕국의 상속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 나라의 자녀로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회개의 기회를 열어놓고 계십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북이스라엘이 다윗왕국을 떠났지만,
포로후기에 다시 돌아와서 예루살렘 재건에 참여하는 명단에 포함된 것처럼,
돌아갈 기회를 계속 주십니다.
역대기의 계보에 빠졌던 단, 납달리, 스불론 지파에게도 또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셨던 지역이 바로 그들 지파의 거주지였습니다.
[사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 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주님, 아직 돌아갈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게 하옵소서.
성령님, 마음을 계속 찔러 돌이키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돌이킬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돌이킬 기회 주시니 감사합니다.
맡기신 사명, 피하지 않고 열심히 감당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