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움
어제는 몸이 너무 힘들어 새벽 알람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푹 잠을 잔 덕분에 어제는 몸이 조금 가벼워지고 오늘은 새벽 기도회에 나갈 수 있었다.
아침마다 역대상을 묵상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역대상 13장, 다윗이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 왕도를 세운 뒤
야심차게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지휘관들과 레위인들과 의논하고
이스라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백성들을 불러 모아
춤추고 노래하며 궤를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수레에 언약궤를 옮기던 웃사가 소가 놀라 뛰면서 수레가 기우뚱해지자 궤가 수레에서 떨어질까봐
손으로 언약궤를 붙잡자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얼마나 당황했을까? 얼마나 놀랬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돌이켜 보았을 것이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지...
다윗은 궤를 옮기는 일을 중단한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도하면서 깊이 묵상했을 것이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방법이 문제였을까?
하나님이 웃사의 죽음을 통해 다윗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을 강단에서 전하지만 귀에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차를 운전해 돌아오는 길에 극동방송을 켰다.
울산의 U교회 담임목사 L목사님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간부터 들어서 본문은 정확하지 않으나 아마도 삼상 25장 내용인 것 같다.
도망자 신세이던 다윗이 무리의 식량을 얻기 위해 많은 목축을 하던 나발에게 청년들을 보냈으나
거절 당하자 흥분하여 병사들을 데리고 나발을 죽이려고 길을 나섰다.
이 상황을 전해들은 나발의 아내가 나아와서 다윗을 진정시키고 음식을 제공하자
아비가일의 말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살인의 죄를 범하지 않고 거처로 돌아선다.
다윗도 자신의 뜻이 거절 당하자 흥분하여 사울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은 모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울과 다르지 않았는데 사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씀을 듣는데 울림이 온다.
다윗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지난 12년 동안 소속된 교회를 위해 헌신한 것이 나의 '의'(의로움)가 되어서
바리새인처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아침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회복되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성장해 왔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팩트이다.
그런데 내가 이 일들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인 양,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교회가 회복되고 정상화 된 것인 양 생각했음을 깨닫는다.
나는 죄인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미천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착각하고, 그렇지 못한 목회자와 성도들을 탓하고 있었다.
자신은 성숙한 성도이고, 열심있는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다고 생각하는 교만해져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할만큼 했다고 자만해 하고,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교회 안에서 나의 위치가 나를 교만하게 만들었다.
선임 장로가 뭐 대수라고 자신이 이 교회를 이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교회의 모든 짐을 다 지고 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교회의 일어난 일들을 장로인 자신이 다 책임을 져야 할 것처럼 우울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차를 아파트 앞에 주차해 놓고 설교가 다 끝나기까지 들었다.
나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 L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하신다.
나의 어떠함을 진실되게 바라보게 하시고 회개하시는 마음을 주신다.
최근 내가 힘들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의'(의로움)이었다.
의로움이 무엇인가? 나는 정의롭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실수나, 중직자의 범죄나, 담임 목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문제였다. 내가 바리새인이 되어서 죄인들을 정죄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저들을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로 낙인 찍고 있었다.
내가 누군데(죄인이)...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누군데(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내가 뭐라고...
아! 하나님이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실망하시고 한심해 하실까
섭섭함, 서운함, 실망감, 허탈함, 지나친 기대감, 안타까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책임감 ....
참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들로 인하여 힘든 몇 달을 보내고 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본다.
지금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한 이 원인을 직면하게 하신다.
결국은 나의 의가 빚어낸 감정들이다.
나를 힘들게하는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식어지고, 놓아버린 기쁨, 열정, 감사, 소망이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모든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나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거룩한 예배자로 서게 하심을 깨닫는다.
나의 어떠함을 아시고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올려 드린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코람데오
나의 어떠함을 직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일 뿐임을 고백한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를 간절히 구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