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
본문 : 역대상 17장 1-15절
다윗은 왕궁에 거하면서 장막과 그 안에 안치된 언약궤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은 선한 부담감이다.
나단 선지자를 불러 성전 건축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
그 선한 마음에 나단도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그날 밤 나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선한 마음을 가진 다윗에게 복을 주시면서도, 성전 건축의 하나님의 계획은 아들에게 주어지고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평소의 마음이 선한 동기의 성전 건축의 계획으로 진행되고
그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우리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 되심이 아니겠는가?
또한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종의 모습, 자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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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호의, 하나님의 호의 ]
자신의 영광보다 자기 백성의 안전과 안식을 먼저 생각하신다.
출애굽한 이후 사사 시대를 거쳐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성전 건축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이 안전히 안식할 수 있는 처소('한 곳')를 마련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셨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의 호의'를 거절하신 것도
이스라엘의 안전과 안식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집을 향한 다윗의 열성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더 크고 깊다.
오늘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호의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주님을 향한 내 헌신보다 나를 향한 주님의 열심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통해 당신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한 성전 건축을 약속하시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 세워질 견고한 나라를 약속하신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완전한 성전인 우리,
곧 교회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실 것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우리를 성전 삼고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윗은 자기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전에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겨우 장막에 머물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려,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을 짖고자 했다. 결과가 어떠했든 다윗의 의도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순수했다.
오늘 나의 관심은 나 자신의 안위에 있는가, 혹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있는가?
다윗은 자신의 순수한 열망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했다.
나단은 이를 좋게 여겨 축복해주었지만,
그날 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후 다시 정정하여 다윗에게 전달한다.
다윗 역시 자기 소원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소원을 심어주기도 하시지만(빌 2:13), 말씀으로 확증하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니 최종 결정의 기준은 말씀이어야 한다.
우리의 안전과 돌봄에 언제나 최선이신 하나님의 호의에 감사로 반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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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거절당한 헌신(?) ]
자신은 궁전에 거주하고 여호와의 궤는 천막에 두는 것을 죄송스러워 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가 영원히 죄송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죄송스러움을 면하고 싶어 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더 죄송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계획을 밝히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의 계획입니다.
사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따지면,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고 하나님께 받은 것인데,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어떤 도움이 되고 무슨 필요가 되겠습니까?
어린 아들이 부모가 주는 용돈을 열심히 절약해서 가계에 보태라고 내놓으면,
그것이 실질적으로 가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것은,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기특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들이 아버지께 용돈을 내놓은 것으로 생색을 내기 시작한다면,
또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뭔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아버지께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여 죄송스러워하는 아들이 훨씬 아버지 보시기에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면목 없음을 벗어보려 하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아버지에게 용돈 타 쓰는 것이 면목 없어서 학업을 팽개치고 돈벌이에 나서는 어린아이의 치기와 같은 짓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하는 시도를 또다시 차단하십니다.
선지자인 나단의 생각에조차 그것이 가치 있어 보이고 훌륭해 보였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난번의 호된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미리 선지자를 통해 여쭤본 것이 다행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행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먼저 여쭤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뜻에 따르는 것이, 은혜로 사는 자의 합당한 태도입니다.
나의 헌신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쭤보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지은 듯이 보일지라도 실상은 그것은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은 것이다."
다윗에게 집을 짓지 않도록 하시고 다윗의 아들(Son of David=다윗의 후손)이 집을 짓도록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후손이 지은 집도 실상은 하나님이 지은 집임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값을 치를 수 없기에 은혜로 주십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은혜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은혜 베푸신 목적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랑하고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바른 보답(?)입니다.
[미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다윗이 성전을 짓지 않도록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엇인가를 지어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떳떳해지고 싶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다시금 경계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복 주실 구실과 이유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그치겠습니다.
그런 것과 아무 상관 없이, 오직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은혜받았으니 은혜에 합당하게 살겠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그런 삶이 하나님께 어떤 유익도 되지 못하지만 기특하게 여겨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무익한 종이 하는 무익한 일을 기특하게 여겨 칭찬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롬 11:35-36]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