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6. 30. 08:52

본문 : 역대기상 29장 20-30절

 

역대기 상을 마무리하며 솔로몬 왕이 즉위하고 다윗의 통치와 행적을 뒤돌아본다. 

이스라엘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인물이 누구일까?

아마도 다윗이 먼저 아닐까? 물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있지만 .

 

한 인물의 젊은 시절과 역사에 등장한 사건과 그의 통치 

그리고 그의 공과 사가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된 인물이 성경에 있을까 싶다.

 

지난 날 모세, 베드로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성경 중 인물 중에 누구를 닮고 싶으냐 묻는다면 다윗의 이름을 내세울 것 같다.

 

평생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낸 인물이었다.

그는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안에서' 살았으며(왕상 3:6),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이의 삶의 전형처럼 가슴에 다가온다.

 

그렇게 살아온 다윗에게 하나님은 커다란 복과 은혜로 답하셨고

위대한 왕, 영원한 왕조를 허락하셨다. 

 

오늘도 다윗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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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모인 백성이 하나님게 제사를 드리고 이어서 솔로몬왕의 즉위식과 사독 제사장의 위임식이 거행된다.

역대기 저자는 마지막으로 솔로몬과 다윗의 통치를 요약한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게 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뛰어난 존귀와 위엄을 주시고,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하셨다.

다윗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나라를 튼튼하게 해주겠다고 하신 약속대로이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귀환 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위로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왕의 요청에 화답하여, 온 회중은 '조상들의 하나님'을 송축한다.

'아브라함의 소명에서 성전 건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은혜와 언약의 궤적을 그려오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와 순종과 헌신의 제사를 드린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 나를 있게 했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할 때, 내일이 있음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곳에서, 그분을 살아계신 통치자로 인정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다윗 왕조와 성전을 핵심주제로 하는 역대상은 왕의 즉위와 제사장의 위임으로 마무리된다.

메시아를 예표하는 왕과 제사장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왕의 통치와 제사장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룬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속죄와 구원, 참된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다윗은 숱한 역경의 광야를 거쳐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 동안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떠났다.

그는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안에서' 살았으며(왕상 3:6),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이의 인생이다.

다윗처럼 살려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다윗처럼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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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이야기, 성전 이야기, 우리 이야기 ]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성전을 짓는 것은, 성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삼하 7:11). 

또한 성전이 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집입니다(29:1).

하나님께 속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것을 마음껏 누리는 특권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면서 다윗이

정직한 마음(17절), 자원하는 마음(17절), 정성된 마음(문자적으로는 '온전한 마음', 19절)을 강조한 것은

성전의 이런 의미를 확인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솔로몬을 자기 것으로, 자기 상속자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왕권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23절의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의 왕위'입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솔로몬을 자기 것으로 삼으셨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그림 언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솔로몬이 짓게 하심으로써, 그 성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써,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은 왕,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왕임을 확인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짓는 자들, 성전이 되기로 한 자들, 성전에 속하게 될 자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드립니다(20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기에,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게 되는 복된 일임을 알기에 기꺼워하며 즐거이 드립니다. 

일천 번제 아니 삼천 번제를 아낌없이 드립니다(21절).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전부를 드려 여호와께 속한 자가 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먹고 마시는 자가 됩니다(22절 상).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면서 딴 주머니를 차는 일, 딴 살림을 하는 일, 딴 상에서 먹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살림을 합치기로 하고 한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집을 짓고 거기에 살기로 하신 것은 

이스라엘과, 다윗과, 솔로몬과 살림을 합쳐 한집 살림을 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살림을 합친 사람에게는 합친 살림이 다 자기 것이 됩니다. 

예전에는 허락받고 쓰거나 먹던 것을 이제는 당연히 내 것으로 사용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동시에 이전에 나만 쓰던 것, 내 것이라 주장하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왕도 여호와께 드리고 제사장도 여호와께 드립니다. 

무리가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했습니다(22절 하).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는 '여호와께 속한 주권자가 되게'의 뜻입니다.

기름을 부었습니다. 구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구별이요 거룩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법적인 개념이며 소유의 개념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 드려진 자가 됨으로써 여호와의 왕위에 앉았습니다(23절). 

하나님의 말씀은 이 왕위를 ‘다윗의 뒤를 이은’ 왕위라 표현합니다(23절). 

다윗이 온전히 여호와께 드려진 왕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다윗을 따라서 솔로몬도 여호와께 온전히 드려진 왕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독도 그렇게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왕에게, 그 제사장에게 온 이스라엘이 복종합니다(24절).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드려진 왕, 다윗의 뒤를 이은 왕, 여호와의 왕위에 앉은 왕을 

심히 크게 하시고 위엄을 주시고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왕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는 온 세상의 구원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의 이야기는, 오늘날 육적 이스라엘의 뒤를 이은 영적 이스라엘 곧 우리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역대기 기자의 눈에는 이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일말의 주저함 없이,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온 세상 나라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0절).

온 세상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온 세상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될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세상의 역사는 마지막 날에 삭제될 것입니다. 

아무 의미 없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역사만 세상의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은, 온 세상 가운데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속한 왕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가 온 세상 역사입니다. 

다윗의 기도 마지막 부분을 다시 새깁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생각을 형성시켜 주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며...“

죄인에게는 이 마음, 정직한 마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당연히 인정하는 정직한 마음이 없습니다. 

온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임을 받아들이는 정직한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함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부정하고 불결한 마음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의 소유자들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 삭제될 것임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의 심령에 정직한 영이신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성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끝까지 내 것을 고집하는 우리의 마음을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새롭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성전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솔로몬에게 짓게 하신 성전보다 더 온전하고 확실한 성전 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성전 가운데서 생명의 양식을 삼시 세끼 부지런히 먹고 마시며

온전한 마음, 정직한 마음 확실히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온전히 주의 것이 되어, 주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