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광야에 대한 묵상
코로나 광야에 대한 묵상 - 2022. 04. 10 주보 칼럼
언제 부터인가 삶과 신앙의 문제들을 광야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진희 목사의 <광야에 살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 광야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은 후로
광야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더 읽었고, 성경을 읽을 때도 광야에 대하여 주목하게 되었다.
광야는 쓸모없는 황량한 땅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의 신이 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민족이 되었으며, 성경 속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임 받은 큰 인물들은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말씀하셨고, 자기 백성들을 만나 주셨다.
출애굽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훈련을 시키신 곳이 광야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광야는 특별한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
성경 속 광야 이야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광야 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하란에서 출발하여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줄곧 중앙산지를 따라 오르내렸다. 그는 거부였지만 장막생활을 하며 살았고 광야에서 가축을 키우며 나그네 삶을 살았다. 이삭과 야곱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게 광야를 살았던 삶의 여정이었다.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광야의 인물이라고 하면 모세와 다윗일 것이다.
모세는 성경에서 가장 광야에서 오래 동안 살았던 인물이다. 훈련받는다고 40년, 출애굽 백성들은 인도한다고 40년, 그의 인생 120년에서 2/3인 80년을 광야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광야를 아는 자만이 광야의 인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도 도망자 인생 13년을 대부분 광야에서 살았다. 아니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도 유대광야에서 양을 치고 살았었다. 기름부음 받기 전 광야가 광야 1기 학교라면, 도망자 신세로 산 13년은 광야 2기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어도 왕이 되고 나서는 평탄하기만 했던가? 자식들의 다툼과 왕자들의 난으로 가정이 광야와 같았다.
신약의 인물 중 바울의 장하의 광야는 또 어떠한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심의 아이콘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누구도 그의 회심과 열심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향 다소로 낙향하여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잊혀진 13년의 세월이 광야가 아니면 어디가 광야인가. 그러나 이 장하의 세월이 있었기에, 바울의 신학이 완성되고, 신약의 많은 서신 서들을 기록하였으며, 세계 선교의 커다란 획을 긋게 만들었다고 본다.
예수님도 가장 성령 충만하신 상태에서도 40일을 광야에서 보내시지 않았던가?
우리 인생은 광야이다. 한 평생 살면서 수많은 광야를 만나고 통과하게 된다. 한 가지 광야만
살다가는 것이 아니다. 가난의 광야, 외로움의 광야, 질병의 광야, 실패의 광야 ...
우리는 살아가면서 광야들을 만날 때 기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광야는 필수라는 생각을 해본다. 광야를 잘 통과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에 말이다.
지금 우리는 평생 처음 경험해보는 전 세계를 전염병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광야를 지나고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전쟁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으로 하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광야의 영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다. 매일 매일 나만의 광야를 잘 살아낼 때 가나안에서 승리의 삶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