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글모음

영적 수준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2. 4. 13. 11:17

나에게는 두 명의 외손자와 외손녀가 있다.

그들을 바라보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성장해 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성장하여

엄마, 아빠를 부르고, 말을 배워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를 한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엎드리고, 기고, 앉고, 서더니 뛰어다닌다.

점프도 하고 높은데도 오르고 씽씽카도 탄다.

지식도 갈수록 늘어간다.

표현력도, 기억력도, 판단력도, 날마다 새롭다.

손자, 손녀의 성장을 바라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모든 장기와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발육하고 발달하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어느 날 아내가 한 성도에게 전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들으면서

약간은 짜증도 나고 실망도 되고 한심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나온 성도를 통해 교회에 오게된 성도다.

얼마 전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고 사이가 벌어졌는데   

코로나 상황을 핑게로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수년을 다녀서 서리집사로 세워줬는데 ...

구원에 대한 확신과 믿음 생활과 예배에 대한  자세에 믿음이 있는가 싶다.

그렇게 설교를 듣고 배웠으면서도 ...

영적 수준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다.

기존 성도들이 새신자들을 언제까지 돌봐주고 챙겨주고 권면과 인도를 해줘야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으로의 정체성, 믿음의 확신, 신앙인으로의 자립, 신앙의 성숙은 요원해 보인다.

육신의 나이는 먹어가면서도 영적인 미성숙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영적 성숙은 더디는 것일까?

왜 영적 성숙에 대해서는 진진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왜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몸부림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도 한심하고 답답한데

영적으로 늘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생각하면

짜증이 나기도 하면서도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진정이 되고 겸손해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 말씀 묵상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알아가기 위해 

날마다 몸부림치라는 권면의 음성을 듣는다.

세상에서는 조금 뒤처지고 존경과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의 나라와 사역에서는 인정받고 싶다.

사랑하는 주님에게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고 싶다.

주님을 만나는 날 부끄럽지 않는 모습으로 뵙고 싶다.  

그래서 날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왔다.

 

지난 30년 동안 지속한 이런 마음과 독서 탓일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져 왔음에 감사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큰바위 이야기 처럼 조금은 주님을 닮은 것 같기도 하여 행복하다.

그러다가도 한없이 추락하는 나의 실패와 넘어짐에는 절망도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뒤돌아서는 일은 결코 없다.

이것이 성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날로 깊어져 가고, 더 신뢰하고, 더 의지하며

주님 만날 날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주님 앞에 서는 날,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