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아람 그술로 3년의 도피 생활,
그리고 요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뒤 2년의 칩거, 왕의 얼굴을 대할 수 없는 외면당하고 무시된 삶,
왕권 쟁탈을 위한 4년 동안 거사를 위한 적극적인 사전 전략적 행동들,
그리고 마침내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압살롬의 일련의 모습을
성경 저자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말과 병거 그리고 호위병 50명을 대동하고 성전 문에 앉아
왕에게 송사를 가지고 오는 백성들을 맞이한다.
왕을 험담하고 이제 왕은 늙고 힘이 없어서 백성들의 송사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겸손한 척, 매우 친절하게 상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를 4년, 오래 기다렸다.
이제 백성들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섰다고 판단한 것인가?
사람들을 12지파에 보내어 백성들을 선동하고,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중요한 사람 200명을 헤브론으로 초대한다.
다윗왕의 충신이요 모사인 아히도벨까지 끌어들인다.
그들은 이유도 모르고 잘못된 길에 들어선다.
그리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
왕권을 향한 압살롬의 야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형을 죽이고 도망한 뒤? 아니면 예루살렘에 돌아왔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왕을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결코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까?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힘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뛰어난 용모와 사람들의 칭찬이 자신이 왕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당한 방법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거사를 도모한다.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하나님의 마음까지는 얻지 못했다.
아니 압살롬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고, 하나님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압살롬에게서 신앙적인 모습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전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결정으로 일을 실행시키고
수단과 방법의 합법성과 정당성은 없이
오로지 목적 달성만을 생각하고 추진한다.
비기독교인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일반이다.
아니 요즘 기독교인이라 하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삶의 주인은 누구신가?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진리가 무엇이고 그 진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가?
비기독교인과 구별된 삶을 성경은 거룩한 삶이라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며 행복으로 생각하는 삶이다.
그러나 과연 날마다 아니 인생 전체를 돌아볼 때
이 물음들에 명확한 답이나 인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날마다 묻고 또 물으면서 진리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상황에 따라 나의 판단과 기준이 헷갈려서는 않된다.
오늘도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자.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점검하며 살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압살롬은 좋은 반면 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