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오늘도 점심을 서둘러 먹고 내려와
운동복으로 갈아 입는다.
한 손에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병원문을 나선다.
어제 청소를 했겄만 오늘도 쓰레기는 많아서
어제 청소한 거리에서 수백 m도 나아가지 못하고 한 봉지를 다 채웠다,.
중간에 비닐 봉지 손잡이가 끊어져서 쓰레기 봉지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냄새가 나는 한가득 담긴 쓰레기 봉지를 가슴에 안고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오는데
팔이 아프고 힘이 든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고 늘 쓰레기는 버려져 있다.
언제까지 주어야 할까?
몇 번 몇십번 주어서 해결될 일이라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끝없는 일이 될 것 같다.
쓰레기를 안고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한 두번 용서해 주신다고
그 다음에는 죄를 짖지 않고 살 자신이 있을까?
몇 번을 용서해 주셔야 죄 짖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 번의 용서를 받고
그 후로는 죄를 짖지 않았다는 기록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끝없이 죄를 짖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의 반복을 할 공산이 크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죄 짖는 일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우리 모습에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인과응보식의 즉각적인 심판을 하신다면 우리는 골 백번도 더 죽었어야 할 것이다.
심판주로 자격도, 능력도 있으시는 분이 참고 또 참으신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늘도 묵상한다.
내가 오늘 줍는 쓰레기 만큼은 자연을 덜 훼손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만족하자.
지속적으로 버려지는 쓰레기로 마음 상할 일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할 방법도 없다.
나의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 아닌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먹을 일도, 남을 탓할 일도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미약하나마 덜 훼손시키려 노력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러면 마음이 힘들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계속 쓰레기를 줍게 될 것 같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마음을 알아가는 나의 훈련장이다.
인내의 훈련 코스이다.
로렌스 형제는 날마다 부엌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오랜 세월 동안 불평없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가정일은, 부엌일은 해도 표가 안난다고 하는데 ...
같은 일의 끝없는 반복일 뿐이라 더더욱 힘든 일인데...
모든 자존심 내려놓고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성령으로 충만히 채웠을까?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하는 모습에서
피조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을 배웠을까?
주어진 일에 끝까지 충성하는 주님을 닮아가려고 마음 먹었을까?
냄새나는 쓰레기 봉투를 가슴에 안고 걸으면서
등에는 땀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었고, 팔은 쓰레기 무게에 아파온다.
시간은 점심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 빨리 외래 진료를 위해 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눈은 자꾸만 아직 줍지 못한 쓰레기가 있는가 두리번 거린다.
그러나 조금은 깨끗해진 강변을 보고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걸었다.
내가 왜 이렇게 변했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