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1. 16. 09:32

민수기 9장 1-20절

 

성막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이제 가나안으로 진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유월절을 지내고 나서 진영 밖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두번째 유월절을 지나고 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이 성막 위에 머무르고

밤에는 불같은 것이 성막 위에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시적인 구름으로 보여지고, 항상 함께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이동에 따라

전적으로 순종하며 이동과 머무름을 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구름이 떠서 이동하면 진영도 이동하고, 구름이 머무르면 진영도 멈추어야 했고

구름이 하루만에 이동하면 또 성막과 텐트를 접어 이동을 하고

일 년을 머무르면 일년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철저히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

우리 삶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본문이다. 

 

첫 번째 유월절 후에 광야를 지나오면서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하는 불순종의 모습이 있었다.

지난 시절 실패의 학습 효과 때문일까?

오늘 본문에는 이들이 이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던 민족이었나 싶다.

 

CCM 가사 중에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고 .." 하는 가사가 있다. 

정말 오늘 본문에서 출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와 구름의 움직임보다 

앞서지 않고 철저히 순종하며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순종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훈련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구름이 이동에 대하여 인간적인 생각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물이 없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수시로 불평, 불만을 털어 놓으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던 그들이 아닌가.

어제 와서 겨우 천막을 치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바로 또 성막과 천막을 거두고 이동해야 한다면 불평이 나오지 않았을까?

황량한 광야에서 물이 부족하고 가축 먹을 것이 없어서 

이제 이동을 했으면 좋게다고 생각하는데,

구름은 기약없이 몇달이고 성막 위에 머물러 있다면 불평,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지 않았을가?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과 경험들이 늘 이런 불평과 불만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긴 광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잘못된 것이 있었던가?

그들이 목말라 죽고 굶어서 죽었던가? 또한 가축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신뢰하지 못한다.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아무 걱정이나 염려없이 평안하게 따라가기가 싶지 않다. 

철저히 순종하지 못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도 오늘 본문 처럼 살지 못했을까?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순종의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불순종의 길을 걷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쩔 수 없는 죄악된 인간의 한계인가?

늘 자신이 주인 행사하려는 유혹이 아담 이후로 지속되기 때문일까?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 온전한 믿음가 무너져 버리면 

의심과 의혹이 찾아오고, 슬그머니 자신이 주인 행사하고 왕노릇하게 된다. 

자신의 지식, 경험, 생각들이 더 강하게 마음을 움직이고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하면 이 순종의 삶을 잘 유지하고 순례길을 마칠 수 있을까?

날마다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나침판을 점검해야 한다.

날마다 코람데오의 자세로 나의 어떠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우보천리' 처럼 천국에 이르지 않겠는가?

신앙의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포도나무에 딱 달라붙어서 살아야 한다. 

 

순종.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순종의 삶

그 모습 따라서 오늘도 발자국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