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에 등불 같은 인생
어제는 교회에 등록한지 2주 만에 갑작스럽게 소천하신 한 남자 성도의 문상을 다녀왔다.
울산에서 장례식장인 기장으로 차를 운전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간다.
지금까지 참 많이도 장례식장을 찾았고 조문을 다녔다.
한번도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고, 등록하던 날 서서 소개할 때 얼굴만 잠시 보았고
소속 구역장으로 부터 간단한 소개를 들었을 뿐이다.
개인의 경제적인 형편과 건강과 삶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말투는 좀 거칠고 공격적이고 투박했었다고 한다.
타 교회를 다니시다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나 교회를 떠나 있었다.
그러나 수년 간 교회를 떠나 있다가 장애인 친국의 소개를 받고
자발적으로 교회를 다시 찾아 오셨다.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일에 교회에 등록하셨는데
등록하던 전날에는 밤에 마음이 설레고 긴장되고, 작은 흥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등록하신던 날 구역 식구들과 식사의 교제를 하였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교회가 장례의 순서를 감당하고 있다.
넝마쟁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가난하고 기구한 삶,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결호낳여 두 자녀를 낳고 열심히 살아오셨을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각 장애인이 되고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하시던 분이셨고,
악기를 잘 다루셨는지 호주머니에는 오카리나가 늘 들어 있었고
기타 교습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정이 있어서 혼자 사시던 분인데 연락이 않되어 가족들이 집에 찾아 갔을 때는
문이 잠겨 있어서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미 운명하신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심장마비사로 사인을 내렸고 병사로 사망진단서는 발급되었다.
부인과 1남 1녀 자녀가 있었으나 부인은 정신과적 문제로 부인과 딸은 상가에는 보이지 않고,
25세 된 아들 혼자서 씩씩하게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도 형제들이 4분이나 계셨던 것 같고 생각 외로 문상객들이 수십명 앉아 계셨다.
구역장 부부와 시민교회에서 고인을 아셨던 김집사님 내외와 함께
1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다가 돌아왔다.
운전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촛불이 작은 바람에 후욱 꺼져버린 느낌 ...
한 사람의 생명이 갑자기 정지되어 버렸다.
간다는 말도 없이, 유족에게 유언도 없이,
교회 공동체에서 제대로 사랑과 섬김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가셨다.
향년 58세. 부산 태생이고 브니엘 고등학교를 나오셨다고 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여기까지가 고인의 인생 여정이었나 보다.
인간은 참 연약하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말이다.
인간은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른다.
모멘토 모리
오늘도 죽음을 생각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준비한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난다.
그 일들이 완료형이던, 진행형이던, 불완전형이던 상관없다.
나머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 아니던가 ..
죽음의 순간은 정말 순간적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힘들 뿐이다.
아침에도 갑상선기능항진증 재발로 누워있는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혼자서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했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가던, 아내가 천국에 먼저 가든
누군가는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진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경건해진다.
조금은 진지해지고, 더 정직해진다.
유한하고 피조물인 인간 존재 자체를
조금은 적나라하게 바라다보는 시간이다.
어제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현재의 시간, 오늘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보다, 어제 보다
오늘이 정말 소중하다.
하루 하루를 후회없이 보람있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