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 없는 믿음, 믿음 없는 행함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비단 종교적인 것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정답은 믿음으로 행함일 것이다.
오늘 본문은 눈이 먼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오면서 부르짖는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은 대답하지 않으시고 집으로 들어가신다.
맹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따라 들어온다.
그러자 주님이 물으신다. "너희는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 주님"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하시니
그들에게 눈이 열렸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 없는 열심도 보고
오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행함 없는 믿음을 보기도 한다.
어느 것이 더 좋지 않은 모습인가?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둘 다 안타까운 좋지 않은 모습이다.
내가 믿는 상대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따르고 있다면
이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부질없는 모습인가?
그 행함의 결과는 무엇인가? 안타까운 모습이다.
또한 믿는 상대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어도 따르지 않으면
이 또한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왜 믿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믿는다고 하는 것인가?
결실 없는 믿음이 무슨 의미인가?
그 결과는 예수님의 경고대로 심판 때에 바깥 어두운 곳에 버려질 것이다.
오늘 두 맹인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
(오늘 본문 앞 부분은 관리의 죽은 딸을 살리신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 예수가 지나가자 불편한 모습으로 예수를 따라 가면서 도움을 구한다.
포기하지 않고 집까지 따라 들어간다.
이 모습에서 믿음과 행함을 본다.
주님은 다시 한번 이들의 믿음을 확인하신다.
본인들의 입으로 고백하게 하신다.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너희에게 되어라." 말씀하신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육신적인 눈, 영적인 눈이 열렸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다. 내 발의 등불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믿음 없는 열심만 있는 행함으로
누구를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 바르게 믿고 있는지
분별 없이 행하고 있다면 주의해야 하고,
행함 없는 믿음을 가지고
영적인 죽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깨어 실천해야 한다.
믿음으로 행하는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좋은 열매를 기대하며,
구원과 영생을 소유하며,
새 시대, 새 나라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 받은 자로 합당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