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
윗 지방은 눈이 왔지만 남쪽은 비가 내린다.
울산도 가지산 쪽, 상북 동네는 눈이 내렸다.
가물어서 비가 더 왔으면 했는데 조금 내리다가 만다.
입춘도 지났으니 봄을 재촉하는 비다.
모처럼 점심을 먹고 카피를 마시며 유튜브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오후에 수술이 있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쉬고 있다.
지금까지 수술이 있는 날은 야외 할동을 자제했다.
나의 불문율, 그것이 환자에 대한 예의이고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왔다.
환자는 아침 진료 때도 "수술 잘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최선을 다해야지 ...
이렇게 살아온지도 어언 30년 세월이 흘렀다.
얼마나 더 수술을 하고 흉부외과 의사로 업무를 수행할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대학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는 이름이 알려진 유명 의사는 아니다.
명의의 정의는 무엇일까?
지금 내가 대하는 환자들이 중증 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환자들은 몸이 아프고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병의 경중 보다 모든 아픈이들의 아픔을 잘 해결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의도치 않은 의사의 길을 걸어온지도 돌아보니 긴 세월이다.
1980년 의과대학을 진학하고
1986년 졸업 및 의사면허 취득
1987년 인턴 수료, 1991년 2월 흉부외과 전공의 수료 및 전문의 자격 취득
1994년 4월 육군 대위로 군의관 근무
그리고 1994년 5월 부터 지금까지 종합병원에서 흉부외과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의사의 길을 걸은 지도 37년이 넘었다. 인생의 절반을 의사로서 살았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수술을 하였을까?
환자들 때문에 잠못 이루는 밤도 있었다.
밤을 세우면 간호한 적도 있다. 마음 아파하며 죽어가는 환우들을 대하기도 했다.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기도 하고 ...
나는 좋은 의사였을까?
의사로서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보람있었는가?
비가 내리는 날이면 늘 감상에 젖는다.
창문을 타고 흘러래리는 빗물을 볼 때면 경이롭다.
모든 것을 다 씻어가고 맑고 환한 모습으로 빗어내는 신비?
일종의 카타르시스적인 작은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름 날 장대비가 내리는 모습은 장엄하기도 한다.
눈물이 많은 것도 비를 좋아한 탓일까?
우산을 쓰고 걷는 것도 정겹다.
불편함 보다는 쌀작 흥분되고 설레고 ...
어떨때는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비가 온다.
비는 늘 농경문화에서는 축복의 대상이다.
광야에도 비가 온다.
오늘도 비가 왔다.
축복이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