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
다음은 존 위클리프가 1382년 자신이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성경의 서문에 쓴 첫 문장이다
"This Bible is for the gover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이 성경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통치를 위한 것입니다.
1858년 테오도르 파커(Yheodore Parker) 목사가 보스턴에서 행했던 설교문에서
이 글을 인용하였고,이 설교를 들은 링컨이 민주주의에 적용하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초석과도 같은 명 연설이 되었다.
올 해 울산신정교회 표어도 :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교회 "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사랑의 은혜를 받아 누린 자로서
그분의 사랑을 닮아
그 사랑의 마음이 이웃에게 흘러가야 한다.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사랑도 그렇지 아니한가.
사랑도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생각한다.
관념에 머루러 있는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랑한다는 수천 , 수만 번의 고백이 얼마나 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가?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본을 보여 주셨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악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게 하심으로 죄 용서와 화해와 구원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에게 흘러보내졌다.
그 사랑의 위대함은 묵상하면 할수록 참으로 엄청난 것이다.
난 이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다 알 수 없고, 다 닮을 수도, 따라 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주님의 그 사랑의 삶을 닮고 따라 가려고 애쓰고 힘써야 한다.
항상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묵상이 먼저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의 방법으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한다.
그리스인답게 살면 그리스도인이요, 이방인처럼 살면 이방인이다.
- 클라우스 펠링거(Claus Felbinger)
어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가슴에 와 다가오는 것은
사랑하면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못본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날마다 어렵고 힘든 이웃들의 이야기나, 각종 언론을 통해 듣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듣고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내가 다 도와줄 수 없다. 능력도 없다.
그러다보니 연민과 동정과 사랑의 마음은 갈수록 식어져 가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애써 외면하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 이야기를 통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말씀 하신다.
교회는 튀르기예와 시리아 지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한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 위해 전교인 작정 헌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교회가, 아니 내 자신이
2023년 이 '사랑'을 더 많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고 노력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퍼온 글
다음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주인공 '마르틴'은 구두를 만들고 수선하는 제화공입니다.
착하고 성실했던 그는 5년 전 자식 2명과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막내아들까지 병으로 죽어서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술로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죽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에 우연한 기회에 성경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삶에 감동받아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회개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성경읽기에 열중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르틴!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갈테니 창밖을 바라보아라.”
'마르틴'은 그날 종일 창밖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언제쯤 오시려나?' 생각하며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신다던 하나님은 오시지 않고 창밖에 늙은 청소부가 눈을 맞으며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그를 가게 안으로 모셔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청소부를 내보내고 두어 시간 쯤 지나서 창밖을 보니, 아기를 안은 여인이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인을 가게 안으로 맞아들여 먹을 것과 입을 옷을 건네주면서 따뜻하게 대접했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해가 질 무렵에 창밖을 바라보니,
사과를 팔고있는 늙은 노파가 사과를 훔친 소년을 붙잡고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서 소년이 죄를 뉘우치도록 다독여주고 사과값을 자기가 대신 지불하면서
노파가 소년을 용서하도록 권유하여 원만하게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자신이 낮에 대접하였던 늙은 청소부와 아기를 안은 여인과 노파와 소년이 나타나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르틴, 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다. 너는 오늘 나를 잘 대접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마르틴'이 펼쳐져 있는 성경을 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으니, 내 형제 중에 보잘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은
구원의 감격을 깨달은 '마르틴'이 하루종일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겪는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