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낮아지심
본문 :마택복음 20장 17-34절
겸손과 섬김을 이야기할 때 낮아짐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표본을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섬김에서 찾는다.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섬기고 그리고 생명을 내어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조물주가 피조물의 형상으로 낮고 천한 죄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이 죄인들의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본인의 입으로 직접 말씀하신다.
수없이 들어온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 따라서 살아볼려고 애쓰기도 했다.
주님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십자가의 죽음이셨다.
내가 지고 갈 십자가는 무엇일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꾸만 위로 높아지려고 한다. 더 가지려고 한다. 더 누리려고 한다.
이 본성을 거슬러 낮아지려니 힘이 든다.
시선은 향상 높은 곳을 바라본다.
더 가지려는 본성을 거슬러 남에게 주고 베풀려하니 쉽지 않다.
천하천하 유아독존, 자유, 인간의 존엄성, 자존심, 평등, 자아 ...
이런 가치들은 겸손과 낮아짐과 내어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영적 성숙은 끝이 없다.
죄인의 낮아짐이란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까?
이만큼 낮아졌으면 됐을까 !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시시각각 스멀스멀 올라오는 높아지려는 본능은 멈추지를 않는다.
그런 유혹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찾아온다.
의지적으로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원심력처럼
인간은 늘 교만해지고 높아지려고만 한다.
스승이 죽으러 가시는 대도,
내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러 올라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상황에서도
한자리 달라고 요청하는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어머니를 보라.
난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모양과 형태는 달라고 그들과 하등 다르지 않다.
오늘도 말과 행동에서 낮아지고 또 낮아지자.
아니 생각 부터, 마음 부터 낮아져야 한다.
난 이미 십자가에 죽은 자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나는 낮아질 수 없으나 예수는 낮아지실 수 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나도 낮아질 수 있다.
내 삶을 온전히 주께 내어드릴 때만이 낮아짐과 섬김과 내어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주님만 따라가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했듯이 날마다 죽노라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