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글쓰기

십자가 죽음과 부활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4. 7. 09:09

원인 없는 결과 없다.

겨울이 없이는 봄이 오지 않는다.

씨앗이 땅에 묻혀 썩어져야 새 순이 대지를 뚫고 솓아 오른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 영생의 부활은 없다.

 

오늘은 정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다.

그래서 저녁에 정사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성 금요일이라고 부른다. 

돌아오는 주일은 부활절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기대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이 있어야 했다. 

먼저 십자가의 죽음을 깊이 묵상해야 부활의 의미가, 은혜가 더 깊이 다가온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가볍게 지나가고 싶어하고 

부활에만 열광하고 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실 때, 정부터 오후 3시 까지 온 천지가 어둠에 쌓였다.

하늘이 참담하고 슬퍼서 어둠으로 세상을 덮어버렸다. 

땅도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온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부서졌다. 

주님도 "엘리 엘리 나막 사박다니" 하시며 하나님과 단절을 슬퍼하시며 소리치셨다. 

하늘도 땅도 주님도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진노의 잔을 마셨다.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고, "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

휘장을 찢으시고  그 사이로 하늘 아버지께로 걸어가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모든 것이 결정이 났지만

재판과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그 수모, 모욕, 희롱과 조롱, 고통, 목마름은

오로지 인간이시기에 감당해야 하는 감정과 육체적인 고통의 힘든 시간이셨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는 길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감당하신 마지막 일이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으시는 일이다. 

무엇으로 이 큰 사랑을 표현하며 

무엇으로 이 큰 은혜에 보답해 드릴 수 있을까?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은 할 수 없어 하고 너무 쉽게 말해 버린다.

 

출근길에 극동 방송에서 듣는 메시지 중에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신 사건이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화목을 이루셨다고 말한다.

화목은 '교환하다', '바꾸다'는 의미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류의 죄를 맞바꾸신 사건인 셈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엄청나게 손해보는 밑진 거래이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어서 ...

 

너는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물어오면 마음은 질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 가신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리라 다짐한다.

그곳이 어디이든지 주님 가시는 곳이면 뒤따라 가겠노라 또 한번 결심해 본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없다.

십자가의 죽음이 우선이다. 

십자가에 대한 내 믿음이 정해지지 않고는 부활을 논할 수 없다.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건너뛰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쏟아부어지던 날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절정을 이루던 날

인간을 향한 은혜가 최고점에 이르던 날

인류의 거대한 죄악의 물줄기가 바뀌던 날

인간의 운명이 바뀌던 날

하늘고 울고 땅도 울고 주님도 통곡하시던 날

그 참담함이 그 고통이 갈리리 언덕에서 실재로 이루어지던 날 

그 날이 오늘 성 금요일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못 박혀 달리신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아니 예수님과 같이 못 박혀야 한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낮아질 수 있고 겸손해지는 길이다.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림이 가능한 길이다. 

모든 상황에서 '내가 아니라 주님이!' 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신비이다.

구원의 신비.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신비, 전무후무한 유일무이한 신비이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긴 신비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나뉘지 않는 단 하나의 구원의 세계의 남극과 북극, 곧 참 복음의 양극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우리의 죽음도 부활과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도 동참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곳이다.

내 생명이 달린 곳이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그 십자가 나로 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