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문제
나는 지금 무엇이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은 무엇일까?
어제 수요 기도회 설교의 설교 제목이다.
성전 문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건강의 결핍이 경제적 결핍을 가져왔고
또한 영적인 결핍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스스로는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고 당장 육적인 결핍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현실이었다.
오후 3시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를 보고 "우리를 보아라"라고 말하고는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가 가진 이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의 발과 발목이 즉시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가 걷기도 하며고,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전으로 들어갔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모든 육적인 결핍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생각했을 것이다.
단순히 앉은뱅이의 건강의 결핍만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결핍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주실 분이 계시고,
그분은 육적, 영적 모든 결핍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선포하고 그를 일으켜 세운다.
얼마나 놀라운 행동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 되신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따라서 그분 한분 만으로 족하다. 그분은 우리의 기업이시다. 우리의 주가 되시고 하나님이 되신다.
모든 결핍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또한 영적이 결핍이 해결되면 육적인 문제도 해결된다는 믿음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이 과정과 순서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그들을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데 원동력이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얼마나 믿음과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베드로는 그의 오른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태어날 때 부터 앉은뱅이가 일어선 다는 것은 기적이다.
의사로서 의학적 판단을 한다면
근육이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대와 관절은 굳어져 있을 것이며, 일어날 힘도 없는데 어떻게 걷을 수 있단 말인가?
앉은뱅이가 베드로 그 한 마디에 자신이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주저하거나 망설이지는 않았을까?
선천적 장애인이라 그는 서는 것과 걷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머뭇거리고 있었던 앉은뱅이를 향해 그의 오른손을 잡고 과감하게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손 잡아주는 성도가 필요하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약 베드로가 일으켜 세웠는데 일어나지 못하고 다시 주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참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그가 일어나 서서 걷을 것을 100% 확신했을까?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어디서 그런 믿음과 확신이 생겼을까?
분명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바라볼 때 성령께서 그런 믿음과 확신을 주셨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이번 여행에서도 경험했지만, 매사에 그런 확신이 부족하여 두렵고 불안해하고 염려한다.
육신의 일도 그런데 영적인 문제, 죄 사함과 영혼 구원의 문제에서 이런 확신과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심각한 일이다. 중차대한 일이다.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심판 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없다면 얼마나 난감하고 절망적이겠는가...
나의 믿음 부족함을 성령께 아뢰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나의 믿음도 필요하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족하지만 이런 믿음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결핍의 근원이 무엇인가?
우리는 늘 뭔가가 더 있었으면 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만족함이 없고 자족함이 없으면 결핍은 더 크게 다가온다.
필요와 충족의 문제는 온전히 해결될 수 있을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면 결핍을 느끼지 않고 만족하며 불평과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결핍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결핍이 영적인 결핍에서 시작된다면 답은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영원한 결핍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영적인 결핍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면 더더욱 해결의 희망은 있다.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렇다.
난 하나님이 그런 분이심을 믿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그런 분이심을 직접 보여 주셨다.
베드로와 요한도 보았다. 그래서 그들도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따라서 했다.
결핍의 문제를 해결했다.
무엇이 진정한 결핍의 해결일까?
인간이 생각하는 결핍의 정도와 해결의 정도의 간격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예수님이 모든 결핍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고, 나의 모든 결핍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드린다.
그러면 된다. 의심하지 않고 주님이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최고의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때에 해결하실 것이다.
그것이 기도이고 믿음이며 신상생활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