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성전 준비
본문 : 열왕기상 5장 1-18절
이제 정치적으로 안정을 유지한 솔로몬은 본격적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한다.
이 국가적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위하여 필요한 재원과 물자와 인력을 준비한다.
먼저 목재가 부족한 이스라엘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잣나무를 떠올린다.
두로 왕 히람에게 협상을 통해 목재 조달의 약속을 받아낸다.
두로 왕실에 필요한 밀가루와 기름을 매년 제공하고 레바논에서 벌목한 목재를 바다를 통해 운반해 왔다.
또한 돌이 필요한 상황에서 산에서 돌을 뜨는 인력, 운반하는 인력, 성전을 건축하는 인력을 파악한다.
역군이 삼만 명,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명, 짐꾼이 칠만 명, 관리가 삼천삼백 명
감독은 아도니람이 맡았고, 솔로몬의 건축자,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었다.
참으로 위대하고 거대한 건축이 진행된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성막의 건축에 대하여 성경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성전 건축에 대하여는 어떤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성전 건축은 허락하셨으나 성전의 모양이나 자제에 대하여 기록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귀하고 최고의 보석과 자재들을 사용하여 아름답고 멋있는 성전을 건축한다.
두로왕 히람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좋은 자재를 구하는 일은 지혜로운 모습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협력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디에도 잘 지었다고 칭찬하시는 구절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이 성전은 수백년 후 바벨론에 의해 폐허가 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가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고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과 섬김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회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후 건설된 성당이나 교회들의 양식은 어떠한가?
중세 성당이나 대형 교회 건물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형태로 지어졌다.
그것도 가능하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건축하는 교회는 건축물 안에 성경적인 내용이 들어 있을까?
공간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미적인 문제, 편리성만이 건축의 주 관심사는 아닌가?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낭비라고 비판할 것이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이 동원된 일꾼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서
왕국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고 만다.
교회 건축으로 중소형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부도가 나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속한 교회도 예배당 건축으로 인해 생긴 많은 부채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은 울산교회에 위탁과 양도를 하고 말았었다.
왜 인간들은 유형 교회에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일까?
자기 과시의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은 무엇일까?
물론 필요에 의하여 적절한 예배 공간이 필요하다. 교육과 교제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예배당이 실용성만을 추구할 수 있을까?
미적, 영적 내용은 무시해도 괜찮을까?
현실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낭비적인 지나친 건축이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 최고의 것, 최선의 것으로 오려드리고자 하는 신앙적인 모습으로 보아야 하는가?
딜레마와 고민에 빠진다.
비단 예배당 건축만이겠는가?
수많은 결정 상황에서 고민이다.
성령의 지혜로 인도함을 받는 것만이 최선이다.
오늘 본문에도 열왕기 기자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인간의 한게와 무지를 인정하며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다시 한 번 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