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선배와의 인연
어제 이 ** 선배와의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3년 전에 선배가 보내 준 책을 대충 훍어보다가 서재에 꽂아 두었었다.
그러다 지난 달에 우연히 그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카톡으로 선배에게 연락을 하였고
수년 동안 단절되었던 교제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선배와는 대학교 때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선배 집, 아버님이 담임하시는 연제 교회에 한번 가본 적이 전부다.
그러다 울산에 와서 박 철현 흉부외과 후배 부부, 서교환 선배 부부와
한번 만나 식사 교제를 하고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손가락 수술을 할 때 부부가 대구까지 병문안을 와 주었고
50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고 갔었다.
치료 후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들 모임에 와서 간증을 해달라고 했는데
소심한 난 거절을 했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나 교제 없이 10년을 넘게 지내왔었다.
사실 선배에 대하여는 개인 사를 잘 알지 못한다.
선배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북 용현교회 영수이셨고 순교하셨단다.
고 장기려박사와 절친이셨다고 하고 평안에서 갑부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총신대 교수를 하셨고 개교회 담임목사로 은퇴하셨다.
어머니는 의사셨다고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도 쓰셨다고 한다.
선배는 한양의대 77학번이다. 민주화 운동의 격동의 시기이다.
PD계열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퇴학을 당하고
인제의대 80학번으로 재입학 하였다.
그러다 학내 데모로 한번 더 유급을 당하고
백병원에서 수련도 받지 못하고 동강병원에서 정형외과 수련을 받았다.
생리학 박사학위도 경북대 의대에서 받았다고 한다.
공보의를 마치고 남목에 개원하였다.
청년들을 성경으로 가르치고 후원하는데 전념하였다.
선배가 양육한 제자들이 수백 명이 넘는다.
의사, 목회자, 교수 ...
더불어 총신대, 고신대 신대원도 나오고 신대원에서 조직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코스타 강사로 오래 사역 하였고, 일 년에 두번씩 단기의료선교도 다녔었다고 한다.
그의 딸은 미스 코리아 진 출신 이 **다.
1년 2남 자녀들을 다 미국 유학을 시키고 지금은 국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인이 최근 유방암으로 힘든 투병 시기를 보낸 것 같다.
그 이후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그는 책을 집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벌써 10권의 책을 출간했다.
자신을 성경교사, 설교목사, 교육선교사,의료선교사, 정형외과 의사로 소개한다.
선임 장로로 교회도 3개나 건축했다고 말한다.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에 주눅이 든다.
삶의 배경, 출발부터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는 3살 때부터 성경 암송을 해왔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성경 구절을 막힘없이 줄줄 암송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히브리어 , 헬라어로 설명을 해 주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
그의 성경은 한 구절도 형광 펜이 칠해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일 년에도 10권 성경을 산다고 들었다.
선배와 성경 공부를 마치고 늦은 밤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본다.
왜 이 선배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에 굶주린 나에게,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한 나에게
신대원 진학을 고민하는 나에게
나의 형편을 아시고
적합한 사람을 부쳐주셨다고 생각한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를 지켜 보시고, 나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이렇게 선하게 인도해 주시고 계신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리라.
더 많이 성경을 암송하고 연구하리라.
내 노년에 목표, 꿈이 생겼다.
할수만 있다면, 늦었지만 성경교사가 되리라.
성도들에게 자녀들에게 손자.손녀에게, 친구들에게
복음을 더 잘 가르쳐 주고 싶다는 열망이 충만해진다.
그 날을 생각하니 흥분이 된다.
벌써부터 심장은 두근거린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베트남 비전트립에서도 베트남 대학생들이
내가 교수님같다고 하던 말을 생각한다.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성령님 도와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소서.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는데 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성경 교사로 쓰임받게 인도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