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현실
본문 : 욥기 21장 17-34절
나아만 사람 빌닷에 대한 욥의 답변은 계속된다.
우리의 생각 안에 하나님을 제한하는 어리석음이 없기는 구하는 아침이다.
보응의 신학, 인과응보의 원리에 깊이 세뇌된 인간들의 사고는
이 땅에서 악인의 형통에 못마땅해 한다.
욥의 말처럼 죽음도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이라는 현실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불편한 진실이다.
이해가 되면 수긍이라도 되어 가슴이라도 덜 답답할텐데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친구들은 계속 자신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있는데
왜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냐고 다그친다.
그러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난미은 침묵하고 계신다.
제발 하나님이 자신을 만나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항변한다.
우리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진리들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성경은 수없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벌을 내리실 것이다.
결코 악인이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소망을 붙들고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나그네 인생길이 형통했는지, 고난의 연속이든 어떠하든지 간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 것을 믿는다.
그러하기에 이 땅에서의 삶이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견디고 인내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이 계속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가 계속된다 할지라도
고난이 연속 되더라도
성경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길 아닌가?
천상병 시인은 이 땅의 삶이 소풍이라고 노래했지만
과연 현실적인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하려 하는가?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소풍 같은 삶이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무엇이 지혜일까?
내 편협한 생각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을 향하여 대드는 것이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침묵하면서 겸손히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기만을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알 수 있도록 도오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은 크시고 위대하시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시기에 그렇다.
아버지 하나님
어리석은 종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