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야로
보문 : 신명기 1장 34-46절
거인들, 거대한 성곽을 보고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러 올라가기를 거부하고
불평과 원망의 소리, 좌절과 절망의 울부짖음이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고 말았다.
백성들의 불평의 소리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진노하신다.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철회 하신다.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멸시이자 멸망을 자초하는 불신이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작은 불평도 다 듣고 계신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며, 말과 행동에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심판 중에도 믿음의 사람, 새로운 세대를 남겨 두셨다.
악한 세대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던 갈렙만은
그의 믿음대로 자손과 함께 그 땅을 차지하고 누리며 살았다.
그는 세대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사람이요,
거대한 성읍과 자손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가뭄이 강의 깊이를 드러내듯', 어려움 앞에서 신앙은 가려지고 가늠된다.
하나님의 소리를 외면했던 그들의 소리를 하나님도 외면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던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도 거절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인생의 주권자가 아니고,
고난을 모면할 때만 필요한 편의적인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신뢰'보다는
네 기도를 들으셔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며
기도라는 형식을 취하지만 기도의 내용이나 태도는 명령조가 아닌가 조심해야 한다.
'돌이켜' 가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려'는 무모한 전쟁을 치르다가 참패한다.
이것은 용기도, 믿음도 아니다. 불순종을 만회할 수 없는 무모함일 뿐이다.
불순종도 문제이지만, 순종 없는 회개도 잘못이다.
불순종에 대한 처벌을 수용하는 것이 참회이 시작이다.
때늦은 후회로 탄식하지 말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매순간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원망과 불신을 거두고 믿음의 언어로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