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나안으로
본문 신명기 2장 1-25절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방향을 돌려 홍해길로 향해
광야와 세일 산 주변을 38년 정말 오랫동안 돌아 다녔다.
때가 되매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다.
광야는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생장점이었다.
그리고 세일 산의 거주하는 동족 에서의 후손들의 땅과
모암과 암몬에 거주하는 롯의 후손들의 땅을 지나서 가게 하신다.
에서에게 기업으로,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에게는 허락하신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도 해서는 않되고 물이나 양식을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우회하기를 명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정복주의나 승리주의로 오해하면 안 된다.
선교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저지른 유럽의 식민지 역사가 그 잘못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을 만나면 그 땅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천하만민이 너희를 무서워하며, 두려워하게 되고,
네 명성을 듣고 떨며, 근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 중에서 왜 에서와 롯의 후손들의 땅은 그냥 통과하라고 하셨을까?
단순히 같은 동족이기에 그런 것인가?
성경은 괄호 안에 기록한 말씀이 있다. 그것도 두번이나 ...
1. 모압 .: 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 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예밈이라 불렀으며,
2. 에서 :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3. 암몬 :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절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또 갑돌에서 아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모세의 기록이 아닌 후세 사람들이 내용을 추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왜 두번이나 비슷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일까?
출애굽 1세대들이 가나안 정탐을 하고 거인족과 견고한 성읍에 놀라서 도저히
자신들은 그것을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며 좌절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에서의 자손이나 롯의 후손들은
가나안 거인들같은 크고 강하고 많은 르바임들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며,
그들도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시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출애굽 1세대들의 불신과 불순종의 결과를 생생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목도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는 교훈이다.
가나안 전쟁도 내 밖의 군사 전력이 아니라 내 안의 영적 전력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신실함이고, 그 말씀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헤스본의 시혼과 바산의 옥을 물리칠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게 하셨고
그 승리로 주변 족속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게 만드시고,
자신감을 가지고 가나안 정복을 가능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깨닫는다.
살다보면 길이 막히고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때도 광야에 길을 내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믿고 의지해야 한다.
나의 길이 되시며 진리와 생명이 되신 주님만이
내가 의지할 분이시며 도와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확신한다.
성령 하나님 !
이 믿음, 이 신뢰와 확신 변치 않고 지키며 살게 도와주소서.
당신의 은혜로 이 험한 고난의 인생길 잘 걸어가게 은혜를 내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