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하는 길
본문 : 신명기 3장 1-11절
헤스본 왕 시혼을 무찌른 기세를 이어 바산 왕 옥을 공격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승리를 약속하시니 겁날 것 없다. 두려움이 없다.
옥과의 전쟁 결과도 왕 시혼과의 결과와 같다.
아니 더 많은 성읍과 노획물을 획득했다.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 말미에는 "르비딤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정탐에서 동일한 상황에서 두려워하여 가나안 입성을 포기했다.
그러나 출애굽 2세대는 높은 성벽, 견고한 성문 그리고 르비딤 족속도 싸워서 모두 진멸하였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3세대가 군사적으로 훈련되고 그동안 무기를 많이 준비한 것인가?
성경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전력의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의 문제이다.
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까? 믿음이고 신뢰이다.
거듭된 승리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며
전쟁이 자신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 믿어지며 확신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문제는 '나'이고 해법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출애굽 1세대도 애굽에서 10가기 기적을 보았다.
홍해를 건너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고 몸소 체험했다.
광야에서 쓴물이 단물이 되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물을 마시며,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던 그들은
출애굽 2세대보다 더 직접적인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과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을 유지할 수 없었을까?
왜 그 믿음으로 가나안 입성을 도전하지 못했을까?
결국 내면의 문제, 불신과 불순종의 문제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광야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그럴 때 고난 가운데서 경험하고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기억을 붙들어야 한다.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살아 계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도우셨 그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서시는 전쟁인가?'라고 기도해야 한다.
한 번 두 번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냈던 경험이 쌓여
더 큰 고난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감당하며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믿음, 믿음이 자란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자면 믿음의 성장은 얼마나 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하나님께 문제를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애굽 2세대는 그렇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의 승리를 통해
가나안 족속과 거인 족 르비딤의 후손들과 높은 성벽과 견고한 성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연전 연승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서 어떤 고난을 만나도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하시리라 믿는다.
성령 하나님
충만히 내주하셔서 온전히 통치하시고 다스려 주셔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간구합니다.
견고한 믿음으로 남은 믿음의 순례길 잘 달려가게 은혜를 내려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