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라사인의 광인
본문 : 마가복음 5장 1-20절
오늘 사역은 데가볼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데가볼리(열 성읍)는 갈릴리 호수 남동쪽에 자리했다.
열 도시가 각기 독립된 통치 체계를 갖추고, 방어와 교역 기회 확대를 목적으로 동맹을 형성했다.
그리스 무역상과 이민자들이 수백 년 전부터 이 도시에 거주했다.
유대인도 이 지역에 살았지만 다수는 아니었다.
본문은 '거라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가다라'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중에 데가볼리 사람들도 예수를 따랐다.
배를 타고 갈리리 바다를 건너 이방인의 땅, 거라사인의 땅으로 건너가셨다.
'마가'가 기록한 최초의 이방인 선교 사역 보고이다.
이방인 거주지, 귀신들린 자, 무덤, 돼지 떼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부정한 곳과 것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셨다.
그 결과 한 사람의 삶이 달라졌고 강력한 증언이 생겨났다.
왜 귀신이 들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 귀신들린 자를 만난 적이 없다.
오늘 본문의 귀신은 예수님을 향하여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소리쳤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방어와 거역의 비명이었다.
우리 시대에도 이 귀신처럼 하나님과 교회와 기독교 가치관을 향해 소리친다.
"나를 괴롭히지 마!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권위를 거부할 때, 사람들은 귀신의 편에 서서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간다.
모든 사람이 자문해야 한다.
"나는 파멸로 이어지는 자율과 자의(아집)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내 삶을 다스리고 나를 용서하며 죄에서 회복 시키고 씻어 참 자유를 주시는
그리스도의 이끄심을 선택할 것인가?"
당신의 대답은 영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광인은 사탄의 악한 능력에 사롭잡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지만
그 힘을 타인과 자신을 망가뜨리는 데만 사용했고
죽은 이들의 거처인 무덤에 머물며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고 있었다.
이것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이다.
힘을 우상처럼 숭배하지만, 그 힘의 노예가 되어 파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영적인 무덤에 머물러 있다.
말씀에 매이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지 않으면 누구든 가련한 욕망이 노예로 살게 된다.
마가는 예수님과 사탄 간의 초자연적 대결을 자주 강조한다.
귀신들의 목적은 그 속에 들어가 자리 잡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을 죄와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것이었다.
귀신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귀신들을 무저갱에 보내실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마지막 때가 아님으로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것은 자신이 귀신들보다 더 강함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군대(헬, Legion)였다.
당시 로마 군대 조직 중 제일 큰 조직으로 3000~6000명으로 편성된 조직이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2000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 바다에 빠져 몰살하고 만다.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후에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
하나는 거라사인들의 반응이고, 또 하나는 귀신들렸던 사람의 모습이다.
①거라사인들은 예수님이 떠나시기를 원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 두려웠고
자기네 신들을 제어하거나 억누르거나 달래거나 하듯이 예수님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또한 자신들의 생계 수단인 돼지 떼 죽음을 보고,
자신들의 수입과 안전의 원천을 잃을 수 있느니 예수님을 포기하고자 했다.
②그러나 광인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다.
주님은 최초의 이방인 제자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
다른 경우에는 치료받은 자들에게 침묵을 요구하셨지만 이번에는 달리 말씀하셨다.
"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이에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왜 달리 말씀하셨을까?
① 귀신 들린 사람은 그동안 혼자 지냈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신 일을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자신의 회복이 증명이 되어 사회로 복귀해 일자리를 찾고
친구 및 가족들과 다시 하나 될 시회를 얻을 것이다.
② 이곳은 이방인 지역이었고 따라서 예수님은 큰 무리가 자신을 따르지도 않고
종교 지도자들이 방해하지도 않으리라 예상하셨다.
③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 보내심으로
자신의 사역을 비유대인들에게까지 확대하셨다.
이 사람은 이방인에게 파송된 첫 선교사였다.
제자는 공간적으로 함께 있는 자만이 아니라, 가라는 대로 가고 시키는 대로 말하는 자이다.
누구를 주인 삼고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어떤 영적인 존재들보다 크신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