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모델하우스
본문 : 마가복음 9장 30-37절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를 떠나 갈릴리 지역을 경유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셨다.
마지막 사역에 집중하시기 위하여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고
곧바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신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자신의 여행 목적을 알려 주신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도 이 말씀에 대답이나, 질문이나 반응이 없다.
이전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대답했다가 야단을 받은 적이 있어 두려워서인가?
선생님은 지금 사역이 활발하고 인기가 유대, 사마리아, 이방 지역에서도 최고 절정인데
왜 자꾸만 죽음을 말씀하시는지 의아해하고 궁금하지만 선뜩 말을 꺼내지 못한다.
자신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정치적 메시야, 해방자 메시야
로마의 식민지에서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자신들이 어느 자리에 오를지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도 되어 침묵을 선택한 것인가.
예수님께는 감히 '죽음'에 대하여 물어보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에 대해 쟁론만 하고 있다.
그러자 예수님이 개입하신다.
"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그리고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말씀하신다.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교회는 천국의 모델하우스이다.
천국의 축소판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천국은 겸손과 섬김이 천국을 운영하는 원리이다.
예수님이 그것을 이 땅에서 몸소 실천하며 보여 주셨다.
아이들은 당시에 신분 상 가장 낮은 자리, 2류 시민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세상의 가치와 교회의 가치는 정반대다.
세상은 한없이 높아지기 위해 계속 올라가라고 가르치고, 교회는 가장 끝으로 낮아지라고 가르친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세상의 가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교회에서 훈련되지 않으면 세상의 가치에 물들어 교회에서도 높아지려고 하고 대접받으려 한다.
세상의 가치를 따지기 앞서 인간의 죄악된 본성 자체가 높아지려고 한다.
의지를 가지고 자기를 낮추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높아지려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정받고 싶어하다는 것 자체도 내면에 높아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주 듣는다. 섬김이 진정한 리더십이다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 새로운 시각의 리더십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대신 그들을 섬겨야 한다.
예수님의 사명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었다.
진정한 리더는 종의 마음을 갖는다.
섬기는 리더들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이 그 어느 직책보다 위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이 보이거든 누가 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충성된 종처럼 먼저 나가서 그 일을 하라.
높은 자리나 명예나 특권을 바라면서 삶을 대하지 말라.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도울 길을 찾으라.
제자는 스승의 길을 따르는 법,
교회가 천국의 모델 하우스라면
교회에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향하는 자의 모습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모습이다.
천국은 관념적이고 고상한 용어가 아니다.
십자가를 직면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천국의 영광은 없다.
겸손과 섬김 없이는 십자가를 질 수 없다.
성령님이여 나에게 겸손함과 섬김의 리더십을 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기억하면서 대하고 섬기게 하소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주님의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닮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