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5. 30. 09:07

본문 : 사도행전 13장 32-52절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다.

 

시편 2편의 아들을 세우시겠다는 약속, 

이사야 55:3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약속,

시편 16;10의 불멸에 대한 약속은

무덤에 묻힌 다윗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율법으로 도무지 이룰 수 없던 '죄 사함'과 '의'를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못박히고 부활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에 매달리며 율법을근거로 예수님을 거부한다.

하박국서 1:5절의 예언처럼 예수님을 거절한 이들의 결국은 멸망뿐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7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사야 55:3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라." - 시편 16: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 생전에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 하박국 1:5

 

청중들은 바울의 말씀을 달게 듣고 다른 사람까지 전도하여 회당에 운집한다.  

말씀이 제대로 들어가면 영적인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반응하게 되어 있다.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내 안에 생기가 돈다.영혼이 살아난다. 영적 부활이 일어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 때문이 아니라,

바울 일행이 받는 찬사와 인기를 시기하여 반박하고 비방했다.

시기심에 사로잡혀 분별력과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특정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나의 비판을 공정한가?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 지식, 경험에 따라 사람과 상황을 판단한다. 

늘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실수나 실패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유대 민족만의 전유물로 여겼지만,

애초에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빛'(사 49:6)으로 삼아 열방을 하나님 나라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저버린 그 사명을 성취하셨고, 

바울과 바나바가 이어받았으며, 지금은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 예수님을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불러주신 것도 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불러주셨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작정'하시는 이에게 주어진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 중에서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 작정하신 이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작정이 오늘 나를 이 말씀의 자리로 이끌었다.

'작정'과 '유기' 교리는 늘 쉬지 않은 내용이다.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감사와 기쁨이지만,

유기된 자들에게는 늘 불만, 억울함,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카데마이와 카토이케오...

 

바울과 바나바는 박해를 받고 쫓겨났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 어떤 것도 주님의 말씀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구원 계획은 항상 plan A이다. plan B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에는 plan B로 보일 뿐이다. 

바울과 바나바처럼  상황이 어떠하든지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때문에 기뻐하는가?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말미암음이다. 

요즘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