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예레미야의 변호자들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7. 2. 11:33

본문 :  예레미야 26장 16-24절

 

고관들과 백성들이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그러자 그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한다.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히스기야와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여호와김 이야기를 덧붙힌다.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랏여하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아라.

그가 예레미야 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여호와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아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아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와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할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오히려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옹호하고 변호하며 항의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것은 잘못되어도 상당히 잘못된 상황이다.

지도자의 타락과 부폐가 가져다 준 결과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과 일반이다.

목회자가 평신도보다 못한 믿음과 영성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장로들이 있었다. 

과거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던 노인들이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일도 무관심하게 대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있었던 분들이다.

 

젊은이들의 개혁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기억과 경험과 지혜와 슬기로움의 중요성을 관가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이야기가 한 예다.

왕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나라가 분열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나이듦의 특징은 지혜이다.

노인들의 지혜에 늘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현명한 사람의 태도다.

그보다 더 완벽한 지혜는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죄로 찌들어 있는 예루살렘에 축복과 긍정의 메시지를 선언하는 이들이 선지자로 칭송받던 시대에,

예레미야는 심판을 선포하다가 거짓 선지자로 몰린다.

하지만 재판을 주관하는 고관들은 '대중의 기대와 부합한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느냐'로 선지자의 진정성을 판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기대한 것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와 미가가 동일한 심판의 메시지에 대한 말씀에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위로의 메시지, 격려의 메시지, 긍정과 평안의 메시지, 축복의 메시지만 선포된다면 경계해야 한다.

듣기 좋은 메시지들이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바른 길 가게 하는 것은 

오히려 심판과 경고 책망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류의 메시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메시지가 반복되고 계속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고 말 것이다. 

예레미야서에는 이 경고의 말씀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입만 열면 심판을 이야기한 것일까?

 

고관들과 백성들의 말에 도전을 받는다.

그래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말씀에 권위와 신뢰를 보이는 모습을 본다.

장로들 몇 명이 예레미야를 변호한다.

또한 요시야 종교개혁시대를 살았던 사반과 그의 아들 아히감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예레미야를 보호했다.

이렇게 진리를 지켜내는 소수가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는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히스기야의 겸손과 회개가 앗수르 공격으로 부터 예루살렘을 구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언제든지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구원할 마음을 갖고 계신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

들려지는 모든 말씀에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종류의 말씀이든지 믿고 순종하게 도와 주소서.

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