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지 바벨론으로 보낸 편지
본문 : 예레미야 29장 1-14절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들에게
시드기야 왕의 특사 엘라사와 그마랴 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내용인즉 곧 돌아오리라는 잘못된 예언을 믿지 말고
그 땅의 평안을 구하며 집 짖고,농사 지으며, 자녀를 낳고 결혼시키고 잘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쓴다.
포로된 자들이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억장이 무너진 느낌, 살아서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
2년 내에 돌아갈 것이라는 거짓 예언자들의 희망이 사라지고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포로로 살아가야 할 막막함 ...
그러나 70년이라는 특정 기한을 언급하시므로
심판에 끝이 있을것이라는 약속을 주시며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붙들도록 "이것은 여호와 말씀이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를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 지금은 돌아가게 해달라고 떼쓸 때가 아니라 시련 속에서 연단되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막연히 버려두실 리 없고 명확한 회복의 때를 계획하고 계시므로,
회개하고 주어진 시간에는 온마음으로 주를 구하고 찾고 만나는 데 몰두해야 한다.
already ~ not yet 의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상황은 동일하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붙들고 이 땅에서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을 참고 견디며 이겨내야 한다.
왜 70년 이었을까?
만연히 긴 시간이 아니다. 포로 귀환이 정확하게 70년만에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애굽에서 산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출애굽 세대들의 몸에 배어 있었던
노예의 근성과 붙들고 살았던 우상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는데 광야 40년 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었다면 ...
그보다 두배 가까운 회개와 훈련의 시간이 필요한 지경이 되었다는 것인가?
역사를 보면 포로로 살면서 그냥 세월만 보내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예레미야 편지처럼 열심히 포로의 삶을 살아냈음을 알 수 있다.
바벨론 왕국의 고위 관리도 되고 왕후도 되며 후대들을 위한 기록들을 남겼다.
많은 재물도 쌓아서 성전 재건에 힘을 보탰다.
유대 민족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다음세대들을 길러 냈다.
구약의 많은 성경들이 이 시기에 씌여졌음은 의미 심장한 일이다.
지난 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지나치게 율법을 더 철저히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좋았으나 결과적으로는 과유불급이었다.
율법에 얶매여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오늘 예레미야의 편지를 들고 가는 두 인물을 주목한다.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이다.
왕실이 불편해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지를 은밀히 품고 갔다.
그들은 요시아 왕의 개혁을 도왔던 서기관 사반과 대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들이다.
사반의 다른 아들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변호한 바 있고
사반의 손자 미가야는 여호와김 앙에게 예레미야의 예언을 전달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 시대의 하나님 나라를 섬길 수 있도록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 할까?
다음세대들의 신앙교육은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는 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은 가정과 교회가 두 축이 되어 신앙적으로 양육해야 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삼위일체 교육, 교회와 가정과 학교가 교육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시대적 변화나 환경이 옛날 같이가 않아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