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라, 낭독하라
본문 : 예레미야 36장 1-32절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명확하고 확실한 사실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벨론의 1차 침공이 있은 한 해 후 BC605~604년 사이,
여호와김 4년에 성전뜰에 갇혀있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여준 여호와의 말씀(요시야 13년 즉 BC 626년 부터 20년간의 신탁)을
필경사, 네리아의 아들 바룩이 받아 적어 다 기록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금식일(여호와김 제오년 구얼)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것을 낭독하라고 말씀하신다.
서기관들이 이 사실을 듣고 바룩을 불러 다시 낭독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내용이라 왕에게 전하고 들어보라고 권한다.
겨울 왕궁에 있던 왕이 서기관을 통해 (세 번째) 다른 고관들 앞에서 낭독하게 지시하지만
듣는 족족 기록된 두루마리를 칼로 잘라서 화롯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친 바벨론파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반바벨론판인 여호와김과 그 세력들은 냉소적이다. 불편하다.
더 나아가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들을 숨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하나님은 처음 것을 다시 기록하게 하신다. 더 자세하게
기록과 낭독을 통해 왕과 고관들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대했지만
그 계획과 기대는 무색하고 헛된 수고가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는 더 강하게 임하게 되었다.
-------------(매일 성경에서 옮김)
하신 말씀을 기록으로 남겨두셔서 하나님의 심판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이시고
또 백성에게는 참 회개를 원하는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표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돌이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경고가 있지만
돌이키면 살 수 있다는 약속도 있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화답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적어도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오늘 바룩의 낭독에 보인 고관들의 반응이 무겁게 다가온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며
은혜로 주어지는 말씀 앞에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없는지 돌이켜본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우리 손에 들린 이 성경을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읽고 듣고 깨달으라고, 계속 듣고 기억하라고 기록된 말씀을 주셨다.
지금 그 말씀 중에서 주님이 내게 반복하여 마음에 새겨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을 가둘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까지 가둘 수는 없다.
예언자가 할 수 없으면 그의 서기관 바룩이 대신하고, 그가 못하면 또 다른 사람이 말씀을 전달한다.
말로 안 되면 글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전달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하는 주체나 방법이 아니라 전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고, 그 뜻에 대한 반응이다.
두루마기를 태워버린다고 하나님의 신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를 죽인다고 해 예언이 취소되거나 성취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도, 나는 안 된다는 자책도 버리고
말씀의 영광과 역사를 드러내는 사명에 매진하자.
말씀을 전하기에 '성전'은 최적의 장소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금식일'은 최상의 시점이다.
바벨론이 애굽을 꺾고 유다마저 복속시키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유다 백성은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곡기를 끊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 악행을 끊고, 하나님과 강대국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행태를 그쳐야 한다.
금식은 내 뜻을 관철하려는 떼씀이 아니라, 기도하며 나를 성찰하고 내가 처한 상황을 해석하는 애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정직하고 진실된 마음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서야 한다.
그것이 가장 우선이고 제일 중요하다.
즉시 전 국가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이라는 예언은
당장 왕에게 알려야 할 시급한 일이지만,
동시에 왕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예레미야와 바룩이 위태로워지는 소식이기도 했다.
참 진리가 지닌 양면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
회개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불편하고 불온한 소식일 수밖에 없다.
'기록하고 낭독하고 전하라'는 명령이 내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