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본문 : 예레미야 37장 11-21절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 하여 잠시 물러난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에 있는 자신의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 성문을 나가려다
친바벨론자로 몰려 잡혀서 구타를 당하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옥)에 갇히게 된다.
시드기야의 개인 면담을 통해 다행히 성전 감옥 뜰로 옮겨지고 매일 떡 한 개씩을 공급받는다.
시드기야의 궁금증은 바벨론의 침략에서 완전히 벗어난는가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증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삶이 참 고달프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모함과 모욕과 고난 앞에서
더욱이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감옥 생활과 죽음의 위험 앞에서 그도 구원을 부탁한다.
40년 예언자의 삶의 결과가 이렇게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언뜻보기에 선지자의 이 행동이 측은하고 비굴해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은 하나님 손에 올려 놓았는가?
생명을 초개처럼 버릴 자신이 있는가?
인간의 연약함에 동정이 가지만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위협과 상황에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진리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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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군대가 담시 퇴각한 사이에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에서 분깃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성을 나서다가
수문장 이리아에게 붙잡힌다. 예레미야는 적에게 투항하러 간다는 혐의를 예레미야에게 씌워 고관들에게 넘겼고,
고관들은 예레미야를 때린 후 서기관 요나단 집의 웅덩이에 가둔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멸망을 공언하던 선지자에 대한 백성의 경계심과 적대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 사역자가 각오해야 하는 현실이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있는지 은밀히 묻는다.
이미 선포된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듣고 싶은 말씀을 어떻게든 끄집어내려 한다.
호의적인 메시지를 기대했지만 예레미야는 수십 년간 전해온 말씀 그대로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당장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왕의 기대에 부응하여 말씀을 왜곡하지 않는다.
보신적인 태도로 선지자 노릇하던 ' 왕의 선지지자들'과는 달랐다.
시드기야처럼 듣고 싶고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는 사람에게 가장 큰 재앙은 듣기 좋은 말씀만 들려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한다.
죽음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고 목숨을 아껴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시대를 분별하고 타협 없는 진리를 전하며 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 없는 용기는 만용이고, 용기 없는 지혜는 시대를 바꾸지 못하는 나약한 도구일 뿐이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인정하지만, 전해준 말씀에 순종하여 결단을 내릴 만한 용기가 없었다.
또 예레미야의 무죄를 알았기에 그를 좀 안전한 시위대 뜰에 머물게 하고 매일 떡을 가져다 주게 하면서도
그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지 않았다.
왕이면서도 바벨론과 유다 관료들 사이에 끼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소신껏 실펀하지 못한 가엾은 사람이었다.
진리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