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시드기야의 갈등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7. 27. 11:13

본문 : 예레미야 38잔 14-28정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은밀히 성전 셋째 문으로 부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여호와 의 말씀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다. 최종판결이 내려진 상황이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항복만이 살길이라고 알려주고,

시드기야는 두 사람이 나눈 말을 발설하지 않으면 살 것이라고 알려준다. 

 

시드기야의 갈등은 지속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지자, 예언자임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예언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요, 예루살렘 성의 파괴를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대 고관들과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살해를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왕이 나라를 끝까지 지키고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명예롭게 전사하지 않고

자기 목숨만 지키려고 바벨론에게 항복했다는 비난과 조롱 비웃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차 예레미야의 예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두려움, 의심, 불확신, 믿음 없음, 자신 없음, 우유부단, 갈팡질팡 ....

내면에서는 수없는 갈등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숱한 날들을 잠못 이루며 지냈을 것이다. 

나이 31세,젊은 왕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바람 앞에 등불같은 크고 두려운 위기 앞에서

고뇌하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한다.

바벨론의 말에 따르다가도 애굽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나 보려고도 했다. 

결국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따르지 않은 불행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보는 앞에서 자식들은 살해 당하고, 눈은 뽑히고, 포로고 잡혀갔으며,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말았다.

 

다행히 예레미야의 생명을 보존해주는 작은 은혜를 베푼다.

아니 둘 다 고관들도 부터 비난을 피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 대화 내용을 속이는 것이었다.

 

내가 시드기야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두려움이 모든 생각을 지배하고 말았던 시드기야처럼,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돌아본다.

건강, 은퇴 후 노후의 삶, 경제적인 문제, 자식, 교회와 봉사 ....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길은

성령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주도권을 성령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치와 다스림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며 최선의 최고의 선택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잘한 선택도 있었고, 잘못한 선택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코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잘못한 선택을 해서는 안 되는 한가지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모든 잘못된 선택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선택만은 목숨을 버리더라도 지키고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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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운명을 재차 물어보지만, 예레미야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봉신이 되더라도 바벨론에 항복하면, 시드기야와 예루살렘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어기고 저항하면, 왕실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음 불탈 것이다.

시드기야는 복잡한 정세에서 살아남으려 애썼지만, 해결책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자기 뜻을 꺾으려는 순종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시드기야는 '영혼(생명)을 지으신 하나님'이라 고백하면서도

자기 생명을 지켜주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 생명이 갈대아인과 그들에게 항복한 유다인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그들을 두려워했다.

또 정권을 잡고 있는 친애굽 성향의 유다 고관들을 두려워하여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감추었다.

두려움은 시드리야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했고,결국 순종에 이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이 늘 순종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두려움을 떨쳐내고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에게 드림으로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전을 찾지 않는다면,

말씀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정보에 그칠 뿐, 내 내면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순종을 방해하는 내 마음속 두려움은 무엇인가?

 

말씀을 듣는 궁극적인 목적은 '순종'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할 말씀이 가져올 두 가지 결과를 염려했다.

자신이 죽는 것과 시드기야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생명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순종 여부는 침묵한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의 지시를 따라 고관들에게 대답하여 생명을 건진다.

시드기야도 예레미야가 전할 말씀대로 순종한다면 생명을 건질 것이다.

남에게는 옳은 길을 가르쳐 목숨을 건지도록 하면서

정작 자신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진 않는지 돌아본다.(고잔 9:27)

 

내 나약한 성품이 말씀에 순종하는 강인한 성품으로 변하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