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요아스의 인생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9. 24. 09:54

본문 : 열왕기하 12장 1-21절

 

요하스는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사람 시비아다.

생후 한살 때 아버지는 외숙 여호람을 병문안하러 이스라엘에 갔다가 예후에게 살해당했다.

왕비 그다랴의 피비린내 나는 왕의 후계자들의 숙청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그리고 고모 여호세바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6년을  성전에서 숨어 살다가

여호야다의 혁명으로 드디어 일곱살에 왕위에 올랐다.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도움으로 나라는 안정되고 두 아내를 얻어 자녀를 두었다.

다윗 왕위는 계승되었으며, 아달랴의 아들들이 파괴한 성전을 보수하기도 하였다.

본문은 제사잗르의 게으름을 기록하지만 역대하는 레위인들의 탓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국 대제사장의 지혜로 헌금을 받아 성전을 보수하였다.

바알 우상들을 척결하며 종교개혁을 하였고 40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130세에 죽자 악한 방백들이 요하스에게 영향력을 기치자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가 회개를 촉구하며 경고하지만

오히려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다.

요하스가 여호야다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여호와께서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달라고 기도했다.

아람 사람들이 요하스를 징벌하러 내려왔고 적은 수로 왔으나 많은 유다 방백들과 백성들을 죽였다. 

아람의 하사엘에게 유다 왕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선조들이 모아두었던

성물과 성전 곳곳에 있던 금까지 죄다 모아 조공으로 바치고 위기를 모면한다.

이런 요하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서 신복들이 반역하여 길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이고 만다.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였다.

(역대하에는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하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를 계승한다.

 

요하스의 인생에 여호야다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는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은혜를 잊어버리자 그의 말년은 타락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안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받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생명과 맞바꾼다해도 부인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살아가면서 신앙 유지(지속)와 성숙을 돕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감사함이 없이 당연시할 때 인간은 타락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모든 일의 시작과 마침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고, 친밀한 교제가 유지되어야만

인간은 바른 삶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용두사미와 같은 신앙, 요하스의 시작과 끝이 다른 신앙이 아니라

신실한 한결같은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적으로 요하스에게 측은한 마음도 든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홀로 자립할 신앙이 없었던 것일까? 

너무 여호야다에게만 의존했던 삶이었을까?

어저면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던 같다. 

그래서 방백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홀로서기가 필요하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들고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받아먹기만 하고 양육만 당하는 어린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성숙, 인격의 성숙,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한다.

아니 나아가 이제는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 도와줘야 한다.

성령님

디다스코, 휘포밈네스코

성경 교사의 꿈을 꾸게 하시고 마지막 불꽃을 피우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