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 월요일
매일 성경에 게제된 김명일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외래교수)의 글을 옮기다.
- 세상 속의 교회와 십자가의 신학
1. 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는 기독교 신앙이 이교적이고 세속적인 문화와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서신이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중(주후 54-55년경),
자신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심각한 내분과 윤리적 혼란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쓴 목회서신이다.
고린도전서는 역사적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난해한 책'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서신은 당시 헬레니즘 문화의 한복판에서 발생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
(분파, 근친상간, 성적 방종, 결혼과 이혼, 우상 제물, 예배의 무질서, 부활 논재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들을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복음에 대한 오해'에서 찾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렌즈를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려 한다.
2. 고린도 교회와 바울의 관계
1) 교회의 설립
사도행전 18장에 따르면,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주후 50-51년경)
고린도에 도착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다.
그는 약 18개월 동안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초기에는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했으나,
반대에 부딪히자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돌렸다.
그 결과 회당장 그리스보, 디도 유스도, 에라스도, 가이오 같은 인물들이 회심하여 교회의 주축이 되었다.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빈자, 노예와 자유인이 섞여 있는 다양한 공동체였다.
바울은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1:26) 라고 했지만, 상류층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부유한 엘리트 계층(가이오, 스데바나, 에라스도 등)과 다수의 하류층 사이의 사회적 격차가
교회 내부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2) 서신 왕래의 역사
고린도전서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있었던 긴밀하고도 복잡한 소통의 과정 중에 나온 산물이다.
학자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① 개척 사역 : 바울이 18개월간 사역하며 교회의 기초를 놓음
② 이전 서신 : 고린도전서 5:9에서 바울이 언급한 편지로, 현재는 유실되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를 '세상 사람들과의 완전한 단절'로 오해했다.
③ 고린도 전서 :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주후 54-55년경),
'글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 들은 소식(1:11)과
고린도 교회가 스데바나 등을 통해 보낸 편지(7:1)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되었다.
④ 근심스러운 방문 : 고린도전서 이후 상황이 바뀌지 않자 바울은 고린도를 직접 방문했으나,
교회 내의 대적자들로 인해 모욕을 당하고 성과 없이 돌아왔다(고후 2:1)
⑤ 눈물의 편지 : 바울은 에베소로 돌아와 "많은 눈물로" 엄중한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다(고후 2:4)
이 편지 역시 유실되었다.
일부 학자에 따라 고린도후서 10-13장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⑥ 고린도후서 : 디도에게서 교회가 회개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마케도냐에서 쓴 편지다(고후 7:6-7).
이러한 맥락에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가장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작성한 서신임을 알 수 있다.
3. 문제의 본질 : 왜 고린도 교회는 혼란스러웠는가?
1) 세속적 지혜와 사회적 가치관의 침투
고린도 교인들은 회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로마 사회의 세속적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가져왔다.
그들은 복음을 헬라 철학이나 수사학적 지혜의 일종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 결과 바울의 투박한 설교보다 아볼로의 화려한 언변을 선호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분파를 형성했다(1-4장).
세상에서의 지위 경쟁이 교회 내의 영적 지위 경쟁으로 변질된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법정 소송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했고(6장),
'주의 만찬'에서도 가난한 자들을 배제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누리려 했다(11장).
2) 과도하게 실현된 종말론
고린도 교회의 신학적 오류의 핵심은 '과도하게 실현된 종말론'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특히 방언)를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이미 종말론적 완성을 이루어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했다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왕이 되었도다")>
이러한 영적 교만은 두 가지 상반된 윤리적 태도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몸은 중요하지 않다'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에서 빠져
성적 방종을 정당화거나 몸의 부활을 부인했고(6,15장)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과 성을 거부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흐르기도 했다(7장).
'이미'(already)로만 치우친 신앙에 대해,
바울은 '아직 아니'(not yet)의 긴장을 강조하며 십자가의 도를 상기시킨다.
3) 영성에 대한 오해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신령한 자'라고 자부하며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했다.
그들은 방언과 같은 가시적인 은사를 영성의 척도로 삼았고 지식을 자랑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약함은 영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바울은 아에 맞서 참된 영성은 은사가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남을 주장하고,
고린도 교회에 성령이 주어진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임을 역설한다.
4) 이교적 관습관 혼합주의
고린도 교인들은 이교적 배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우상 신전에서의 식사 문제(8-10장)는
그들이 여전이 사회적 유대 관계를 위해 우상 숭배의 관습과 타협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이를 영적 간음으로 규정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거룩함을 요구한다.
4. 주요 주제
바울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언제나 복음의 본질, 즉 기독론과 종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1) 십자가의 신학
서신 초반부(1:18-2:16)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선포한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추구하던 '세상의 지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보지만,
바울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다.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자랑을 폐한다.
하나님은 세상의 천한 것들을 택하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따라서 교회 안의 분쟁과 자랑은 십자가의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선언하며,
교회가 힘과 영광이 아닌 약함과 희생의 원리 위에 서야 함을 가르친다.
2) 기독론 : 주(Lord)되신 예수 그리스도
고린도전서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주권'이다.
1:2에서 바울은 성도를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8:6에서는 구약의 쉐마(신 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를
기독론적으로 재해석하여, '한 하나님 곧 아버지 ...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선포한다.
이는 예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의 신적 정체성 안에 포함시키는 놀라운 신학적 진술이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성도는 "값으로 산 바 되었으니"(6:20),
자신의 몸, 성적 생활, 결혼,우상 제물, 은사 사용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선언은 고린도전서 윤리의 기초다.
3) 종말론 : '이미'와 '아직 아니'(already but not yet)
바울의 신학은 종말론적 긴장 속에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현 시대는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는 미래의 복을 현재에 모두 누리려는 '실현된 종말론'에 있었다.
바울은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첫 열매'임을 강조하며,
성도의 부활이 미래에 있을 사건임을 분명히 한다.
이 종말론적 유보는 현재의 삶에 윤리적 책임감을 부여한다.
우리는 아직 육체를 입고 있기에 절제해야 하며,
주님이 오실 때가지 인간적 판단과 심판을 유보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데 충성해야 한다.
7장의 결혼 문제나 11장의 주의 만찬 문제도
'때가 단축되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라는
종말로적 시각에서 다룬다.
4) 교회론 : 하나님의 성전과 그리스도의 몸
① 하나님의 성전
3:16에서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교회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공간임을 의미한다.
분쟁으로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
6장에서는 성도 개인의 몸이 성전이므로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② 그리스도의 몸
12장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며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몸에 여러 가지 지체가 있으나 결국 한 몸인 것처럼,
교회 내의 다양한 은사와 사회적 배경은 차별의 이유가 아니라 상호 의존의 근거가 된다.
약해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하다는 원리는
세상의 계급구조를 뒤집는 혁명적인 교회관이다.
5) 성령과 은사 :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을 개인의 영적 과시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바울은 성경의 본질적 사역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는 것'(12:3) 이며,
모든 은사가 '교회의 덕'(dedification)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 선물임을 강조한다(12:7).
13장의 '사랑'은 은사 논의의 가운데 위치한다.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예언도 소음일 뿐이다.
사랑은 은사보다 우월한 길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은사가 목적해야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14장에서 바울이 예언을 방언보다 우위에 두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방언과 달리 예언은 공동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덕을 세우기 때문이다.
5. 구조와 내용 분석
1) 서론(1:1-9)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정의하며,
그들의 현재 상태(문제 많음)가 아닌 그들의 신분(거룩함)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감사는 이어질 책망의 배경이 된다.
2)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은 문제들( 1:10-6:20)
주로 교회 내의 분열과 도덕적 해이에 다한 바울의 대답이다.
① 교회 내 분쟁(1:10-4:21) : 바울은 분쟁의 이유를
인간 지도자에 대한 잘못된 숭배와 세상 지혜에 대한 집착으로 진단한다.
그는 사역자를 '농부'나 '건축자'로비유하며,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임을 강조한다.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자 '청지기'일 뿐이다.
② 근친상간과 교회의 징계(5장) : 바울은 한 교인이 저지른 심각한 음행을 교회가 용납한 일을 지적한다.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라고 말하며,
거룩을 위해 그 악한 자를 내어 쫓으라고 명한다.
③ 세상 법정 소송(6:1-11) : 성도 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가져간 일을 비판한다.
이는 종말에 세상을 심판할 성도의 존엄을 망각한 행위다.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④ 성적 방종과 몸의 신학(6:12-20) :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는 고린도 시민들의 구호를 반박하며,
몽음 은란을 위해 있는 것이아니라 주를 위해 있는 '성령의 전'임을 상기 시킨다.
3) 고린도 교회의질문에 대한 답변( 7:1-16:4)
7:1의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라는 문구는
바울이 이제 서면 질문들에 답하기 시작할 것임을 알려 준다.
① 결혼과 독신 (7장): 성적 관계, 결혼, 이혼, 독신, 과부의 재혼 문제를 다른다.
바울의 핵심 원리는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는 것이다.
종말이 가까웠으므로 현재의 상태에 매이지 말고 주를 섬기는 데 집중하라는 권면이다.
② 우상 제물 문제(8:1-11:1) :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지식(gnosis)을 가진 자들이 신전에서 고기를 먹음으로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문제를 다룬다.
바울은 지식보다 사랑이 덕을 세운다고 말한다.
9장에서는 자신이 사도적 권리를 포기한 예를 들고,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를 거울삼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결론적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10:31)는
대원칙을 제시한다.
③ 공적 예배의 질서(11:2-14:40) : 바울은 '머리에 덮는 것'의 문제를 다루며,
창조 질서와 당시의 문화적 관습을 존중하여 예배 질서를 지킬 것을 권면한다.
이어서 '주의 만찬'에서 부자들이 먼저 먹고 취함으로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태를 책망한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몸을 분별하고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은사의 다양성과 몸의 통일성, 사랑의 우월성,
예언과 방언의 비교 및 질서 있는 사용을 다룬다.
방언은 자기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므로,
공적 예배에서는 깨달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④ 부활(15장) :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변증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성도의 부활의 보증이다.'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되다.
바울은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종말의 승리를노래하며,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한다.
⑤ 연보와 결론(16장) :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헌금(매주 첫날에 모아 두라, 2절) 에 대한 지침,
여행 계획, 마지막 문안 인사를 전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라는 종말론적 기도로 서신을 마친다.
6. 나가는 말 :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는 1세기의 특정 도시와 교회에 보낸 편지지만,
그 교훈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현대 교회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오늘날의 교회 역시고린도 교회처럼 물질주의, 성적 유혹, 지적 교만,
개인주의적 영성, 포스트모더니븜의 상대주의적 가치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서신은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in the world) ,
세상에 속하지 않고(not of the world)
어떻게 거룩한 정체성을 지켜 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바울은 그 해결책으로 세련된 프로그램이나 인간적인 지혜가 아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원형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한다.
우리는 이 서신을 통해 참된 영성은 탁월한 은사나 지식의 과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는 '사랑'에 있음을 배운다.
또한 우리의 몸과 삶이 장차 올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종말론적 긴장 속에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따라서 고린도전서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교회가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책이다.
바울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너희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16: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