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42

환대

한 장으로 되어 있는 요한 서신의 세번째 책이다. 어떻게 이 짧은 서신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을까? 그건 아마도 나그네들을 향한 가이오의 환대를 배우고 닮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 장로는 한 사람 가이오를 지명하여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다. 가이오는 어떤 인물일까? 가이오 ‘기쁨’이란 뜻. 1. 바울의 3차 선교여행 때 바울과 동행한 마게도냐인. 에베소에서 바울, 아리스다고와 함께 폭도들에게 붙잡혀 연극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봉변을 당했다(행 19:26-29). 바울의 통역자로 보인다. 2.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마게도냐에서 아시아까지 바울과 동행한 더베 사람(행 20:4). 1번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3. 바울이 세례를 주었던 고린도인(고..

말씀 묵상 2022.12.30

사랑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랑은 비움의 사랑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이신 분이 피조물의 형상으로 피조세계에 들어오신 사건이다. 인간들이 범죄하여 구원받을 길이 없어서 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표가 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죽으심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다.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놀랍고 위대하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절정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사랑 타령을 하지만 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욱 탈진리를 살아가는 시대에 피상적이고 찰라적이며 육체적이고 쾌락적인 사랑만 추구하고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그 사랑에 실망하고 허탈해하며 좌절하고 아파한다. 인간의 ..

말씀 묵상 2022.12.29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 만큼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을까? 사랑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드라마, 영화, 책,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사랑을 빼놓고는 인간사를 논할 수 없으리라. 사랑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들이 있고, 표현들이 있으며 이 주제로 끝없이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관련된 이야기와 삶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의 본체, 본질이시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완벽하게 실천하신 분이 없다. 그렇다면 사랑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사랑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 ..

말씀 묵상 2022.12.23

의로운 삶

요한 사도는 당시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이 지적, 영적인 것이 가치있고 육체는 무가치 함으로 어떻게 살아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성도는 삶도 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죄는 불법이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본을 보여 주셨기에 주님을 따르는 자는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는 받은 구원의 가치는 얼마만한 것일까? 구원의 소중함, 구원의 가치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묵상해 보았는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베풀어 주신 구원이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 있을까? 잠시 잠깐인 이 땅에서 영원을 선택하는 이 일보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 중에 이보다 절대적이고 중요한 결정이 있..

말씀 묵상 2022.12.22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의 정의는 명사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행함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순종, 실천, 행함이라는 말이 반드시 따라온다, 믿음과 행함,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바른 믿음, 진실한 믿음은 순종과 행함으로 증명된다. 바울의 믿음과 야고보의 행함이 다른 것이 아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쪽의 노를 균형있게 저어야만 앞으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 한쪽 방향으로 돌고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균형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또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를 저어야만 한다. 노를 젖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

말씀 묵상 2022.12.20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의 정의는 명사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행함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순종, 실천, 행함이라는 말이 반드시 따라온다, 믿음과 행함,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바른 믿음, 진실한 믿음은 순종과 행함으로 증명된다. 바울의 믿음과 야고보의 행함이 다른 것이 아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쪽의 노를 균형있게 저어야만 앞으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 한쪽 방향으로 돌고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균형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또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를 저어야만 한다. 노를 젖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

말씀 묵상 2022.12.20

하나님을 경외하라

오늘 전도사 말씀 묵상의 마지막 장이다.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노년이 금방 다가온다. 아니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되었나 하고 후회하게 된다. 어제 고등학교 동기 김태만이의 페이스북에서 승승장구하던 고등학교 동기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했다는 내용을 접했다.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CEO 자리까지 올랐으니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많은 스트레스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은 결국 일찍 찾아온 죽음을 맞이하고 끝나고 말았다. 성공한 삶인가? 불행한 인생인가?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만, 이것이 삶이 헛되고 헛되다고 노래하는 전도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해 아래에서 삶의 한계와 무상함 ..

말씀 묵상 2022.12.18

불확실성

인생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 땅의 모든것이 불확실하다. 미래도 불확실 하고 젊음도 불확실하다. 그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요, 유한한 인간의 본질이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는다. 살아가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적이거나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헛되다고 인생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잘 누려야 할 대상이다. 아무리 누려도 헛되다는 것을 알고 누려야 그 누림이 참된 즐거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누림이나 행복 자체가 우상이 되어 방종과 방탕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만 기억한다면, 잘못하고 실수할까 너무 위축하기보다는 하나님 주신 자유..

말씀 묵상 2022.12.17

오늘 본문은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언어,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고 가르치셨다.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말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품은 생각대로 말하고, 알고 있는 만큼 말하며, 평소에 사용하는 습관대로 말한다. 말하는 사람의 어떠함을 판단하는 기준이 말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지식의 수준, 경험, 삶의 태도, 환경, 품고 있는 생각, 가치관 등 그 사람에 대하여 대부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말할 때 언어의 선택도 중요하고 태도도 중요하다. 말은 듣는 상대방이 있다. 많은 말이 중요하지 않고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이 중요하다. 말이 많으..

말씀 묵상 2022.12.16

때와 기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앞 날의 때와 기한을 안다면 좋은 점이 참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지혜자이고 의인이며 지식이 많아도 그가 점성술가이고 예언자이고 전문가이고 미래학자라고 할지라도 앞날을 예측하고 정확하게 인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연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다. 하나님을 믿는 나에게는 우연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다. 왜냐하면 만사가 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속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않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은혜 속에 살아가면서도 그 은혜가 그냥 주어지는 줄로 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말씀 묵상 20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