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42

사무엘 하 말씀 묵상을 마치며

한나의 기도로 시작한 사무엘서는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 마당에 제단을 쌓는 일로 끝난다. 더 많은 군인의 징집과 세금 징수를 위하여 실시한 인구 조사로 인하여 전염병이 임하고 7만명의 백성들이 죽어간다. 이에 지도자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다. 선지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내려가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자 하나님의 용서가 이스라엘에 임한다. 다윗에게서 본받아야 할 부분이 참 많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리던 자였으니 말이다. 오늘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거나 선지자들로 부터 지적을 받으면 열린 마음으로 그 지적을 순수히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돌아서며 다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는 부분이다. 왕의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를 이용하여 아..

말씀 묵상 2022.10.31

나의 주변인들

본문 사무엘하 19장 16~39절 반란은 진압이 되고 다윗 왕은 예루살렘 왕궁으로 회군한다. 성경은 제일 먼저 사울왕의 지파,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나와 엎드려 다윗이 피신할 때 오아을 저주했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조아린다. 그 뒤에 사울 지방의 종 시바가 자식들과 종들과 함게 나아 온다. 그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므비보셋이 나와 왕을 영접한다. 마지막으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나아와 함게 강을 건너고 왕을 배웅한다. 오늘 4명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먼저 시므이는 다윗 왕이 피신할 때는 그를 향해 돌을 던지며 저주하더니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다시 왕권을 회복하자 가장 먼저 나아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다. 사람의 한치 앞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살아..

말씀 묵상 2022.10.21

공과 사의 구별

아들 압살롬의 죽음 앞에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한다. 아무리 자녀가 여러 명이었다고 해도 어느 손가락이 아프지 않겠는가? 다윗은 압살롬을 후계자로 생각했을까? 유독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전쟁을 마치고 돌아 온 군사들 앞에서 다윗이 보인 행위는 바르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왔는데 반란의 우두머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모습에 그들은 펄쭘해진다. 조용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요압의 충언이 없었다면 상황은 많이 꼬이게 되었을 것 같다. 냉철한 판단 보다 감정이 앞설 때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이럴 때 요압 처럼 충언을 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일까! 또한 그런 충언에 기분 나빠하거나 화내지 ..

말씀 묵상 2022.10.20

무슨 소식을 듣고 싶은가?

본문 : 사무엘하 18장 19-33절 압살롬이 죽자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의 승전보를 왕에게 알려야 한다. 요압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살운 감정으로 압살롬을 죽여버렸기 때문에 마지 못해서 구스 사람을 시켜 왕에게 전쟁 소식을 전하게 한다. 그런데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공명심에 불타서 자기가 직접 왕에게 승리의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졸라된다. 결국 마지못해 요압은 허락하고 먼저 출발한 구스 사람을 앞질러 왕이 싫어할 압살롬의 죽음은 말하지 않고 전쟁의 승리했다고만 전한다. 그러나 곧 뒤이어 도착한 구스 사람의 보고로 압삽롬의 죽음이 다윗에게 알려진다. 다윗이 듣고 싶었던 소식은 무엇인가? 전쟁의 승리와 압삽롬의 생존 소식이 아니었겠는가? 이전에도 소식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아의 사망 소식이..

말씀 묵상 2022.10.19

압살롬의 패전과 죽음

본문 : 사무엘하 18장 1-18절 결국 부자지간의 권력 쟁취를 위한 전쟁은 벌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용사답게 다윗은 전략을 세우고 지휘관들을 세워 전쟁에 대비한다. 그러나 군사들은 다윗이 전투에 나가는 것을 저지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냉정하게 전투를 지휘하지 못할 수도 있음과 다윗의 목숨만을 노리는 적에게 유일한 표적이 될 수 있음으로 지혜로운 부하들이 그의 출정을 막고 나선다. 그러면서 아들 압살롬은 죽이지는 말라고 부하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그래도 아버지의 자식을 향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다.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하였더라도 죽이기 까지는 할 수 없었다.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용맹스럽고 다윗왕을 지키려는 충성스런 역전의 용사들인 다윗의 군대가 특별한 마음가짐 없이..

말씀 묵상 2022.10.18

내가 곤경에 처할 때 누가 도와주었던가?

본문 : 사무엘하 17장 15-29절 압살롬이 후새의 계책을 선택하고 아히도벨의 훌륭한 전략을 버린다. 이에 후새는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그리고 이들은 한 여인을 통해 젊은 전령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통해 요단 나루터에 기다리고 있는 다윗 왕에게 왕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첩보 작전이 진행된다. 이 소식을 듣고 다윗 왕과 일행은 새벽까지 신속하게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을 향한다. 이 직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이 첩보 작전이 발각되자 에느로겔 지역의 무명의 한 여인이 기지를 발휘하여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숨겨주고 추격자를 따돌리는 도움을 베풀어 위기를 모면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탐할 때 파송한 정탐 군들을 숨겨준 기생 라합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만약 이 여인의 도움이 없어 ..

말씀 묵상 2022.10.18

고난 중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본문은 사무엘하 16장 24절 ~ 37절이다. 오늘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의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그를 따르자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으로 제사장들과 법궤를 다시 성으로 돌려보낸다. 모략가 아히도벨이 반역에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모략이 어리석게 되기를 기도하며 다윗 오아을 따라가기 위에 나온 아랙 사람 후새를 만나 왕궁으로 돌려 보내고 상황을 파악하고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첩보를 보내게 지시한다. 과거 사울왕 시절에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법궤를 가지고 나간 사실이 있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자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기에 만약 다윗 왕이 자신만을 위하고 법궤의 주술적 힘을 의지했다면 법궤를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했을 수도 있다. "천만인이..

말씀 묵상 2022.10.14

다시 광야길로

민심이 다윗을 떠나 아들 압살롬에게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한 다윗은 도망하기로 결정한다. 그를 따르는 충성된 신하와 군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과 전쟁을 선택하기 보다는 싸움에서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가고 성전과 왕궁이 파괴될 것을 염려하여 도망을 결정한 것이다. 지도자가 결정을 할 때, 자신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먼저 공동체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지 묵상되는 아침이다. 오늘 도망가는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을 보면서 한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 다윗을 왕으로 세웠던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의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이 따랐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그렛 사람, 블렛 사람, 가드 사람 그리고 잇대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말씀 묵상 2022.10.13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자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아람 그술로 3년의 도피 생활, 그리고 요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뒤 2년의 칩거, 왕의 얼굴을 대할 수 없는 외면당하고 무시된 삶, 왕권 쟁탈을 위한 4년 동안 거사를 위한 적극적인 사전 전략적 행동들, 그리고 마침내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압살롬의 일련의 모습을 성경 저자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말과 병거 그리고 호위병 50명을 대동하고 성전 문에 앉아 왕에게 송사를 가지고 오는 백성들을 맞이한다. 왕을 험담하고 이제 왕은 늙고 힘이 없어서 백성들의 송사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자신이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겸손한 척, 매우 친절하게 상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를 4년, 오래 기다렸다. 이제 백성들의 마음이 자신에게..

말씀 묵상 2022.10.12

압살롬에 대한 묵상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짝사랑하여 상사병으로 앓고 있다가 친구 요나답의 잘못된 충고를 따라 다말에게 직접 과자를 구어 직접 먹이게 해 달라고 아버지 다윗에게 요청하자, 다윗은 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측은히 여겨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 요청을 허락한다. 그러나 사랑하면 질투와 미움도 더 강한 것인가? 다말을 범하고는 그를 집에서 쫒아버린다. 다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성적 욕망에 불과했음이 들어난다. 참 무책임하고 양심에 화인 맞은 자다. 일반 서민의 여자도 아닌 이복동생인데도 그가 보인 행동을 보면 단순한 성적 요망의 대상에 불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상황을 안 오빠 압살롬은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항의나 저항을 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다가 양의 털을 깍는다는 구실로..

말씀 묵상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