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글모음

가을 같은 하루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11. 24. 15:40

2025.11.23. 토요일

 

아침인데 평상시 보다 늦게 일어났다.

근무가 없는 날임을 몸도 아는지 늦게사 눈이 뜨였다. 

8시경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 Q.T를 하고 9시 넘어서 아침을 먹었다.  

아내는 딸내집에 가고 없어서 혼자서 아침을 챙겨 먹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서 서둘러 집을 나서 입화산을 향했다.

 

10시경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물통 하나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바람 한 점, 구름 한 점 없고 하늘은 푸르고 따스한 햇살이 늦가을을 실감케 한다.

아파트를 지나고 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섰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길을 걸어간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들려오고 지저귀는 새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자동차 소리는 잦아들고 인적이 드문 산길로 접어 들었다.

어디선가 나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다.

내 눈으로 딱다구리를 처음 보았다.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는 모습도 ...

 

한적한 오솔길을 무념무상, 아무 생각없이 길을 따라 걸어 오른다. 

쉬지 않고 걷고 또 걷다 보니 벌써 속옷은 축축하게 젖었다. 

토요일인데도 인적이 드물다. 

정상의 정자에 올라 올산시내를 한번 휙 둘러본다.

다시 반대편을 향해 내려갔다.

 

시와 노래가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대나무 군락지 못미쳐서 근로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물어보니 산딸기나무란다.

소나무들은 채선충으로 죽어가고 대신 편백나무를 식수하곤 했는데 

사이 사이에 산딸기 나무라니 ....

최근에는 자생적으로 오동나무가 수십 군데 자라난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다. 

 

집을 나서서 지금까지 조금 전 나무 심는 분에게 질문한 것 말고는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편백나무 숲에 도착하여 드디어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을 보니 거의 만 보 가까이 걸었다.

풀숲을 들어갔다가 바지에 작은 풀 열매들이 수도없이 진득기처럼 달라붙었다.

한참을 떼어내고 나서 물을 마시고 하늘을 처다본다.

늘 이곳에 오면 S자형 데코 의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곤 한다.

높은 편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청명하다.

누워서 사진을 찍거나 KBS FM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오늘은 앉아서 롯데 제과에서 나온 바나나 코코넛을 한 봉지 먹고 허기를 달랬다.   

 

온통 낙엽들이 바닥을 덮었다. 

몇년 전만 해도 작은 편백나무 묘목들이 이젠 제법 자라서 높이가 수m나 되었다.

생명은 이렇게 저절로 생로병사를 거치면서 자라고 울창해진다.

숲은 소나무에서 편백나무 숲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또 열심히 걷고 또 걸어서 집에 오니 왕복 3시간이나 걸렸다.

무려 2만보 가까이 걸었다. 

사우나에 들러 씻고 이발을 했다. 

그리고 집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한 두 시간을 잤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저녁을 챙겨 먹고 다시 소파에 누웠는데 또 잠이 들었다

피로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침대에 가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다음날 8시이다. 

무려 12시간 가까이 잠을 잤다.

최근에 이렇게 오랜 수면을 취한 적이 없었다.

피곤해도 6-8시간이면 충분했는데 ...

 

하루 종일 몇 마디를 했을까?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나무 심는 근로자에게 한 질문, 미용실에서 원장과 나눈 몇 마디 대화가 전부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너무나 고독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 

발에 밟혀 부서지는 낙엽처럼 사라져가는 우리 인생인데 ....

하루가 참 슬쓸함, 외로움,고독함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이런 날도 있지.

모든 날들이 분주할 필요도 없고,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금은 염려와 두려움이 들었다.

한 때는 고독을 즐긴다고 객기를 부린 젊은 날도 있었다.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이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앞으로 혼자 남겨질 때가 온다면 ....

가을이라 조금은 센티멘탈해진 것인가.

단풍의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낙엽의 서글픔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T.V와 휴대폰 말고는 나와 놀아줄 친구가 없다면 ...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아내의 말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기회 가면 모처럼 만에 이야기한다고 말하던 동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무엇을 하며 살아야 죽는 날까지 외로움과 쓸쓸함과 고독에서 자유로울까? 

산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분들(자연인)은 고독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과거 수도승들과 수녀들은 이런 고독과 처절한 싸움을 하였을 터인데 ....

노인들의 고독사가 남의 이야기 같이 않다. 

 

가을의 쓸쓸함을 몸으로 체득한 하루였다.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먼저 말을 건내고 전화를 걸어야 할까?

모임에 자주 나가고 만남을 귀찮아하지 말아야 할까?

 

인간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서로 체온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말을 섞어가며 아웅다웅하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 아닌가.

혼자가 아니면 된다.

외로움이 무서운 적이다.

 

가을같은 하루를 보냈다. 

인생의 가을에 서서 가을의 소회를 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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