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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만 하라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3. 4. 10:48

2025.03.04(화)
누가복음 8:40-56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할 일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누가복음 8:40-56>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각각의 사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기다린 중에 그중에서도 

가장 애타게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회당장이면 나이가 좀 들었을 것입니다. 

백성의 장로급에 해당되는 위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에게 12살 된 딸이 있었습니다. 늦둥이인가 봅니다. 

거기에다가 외딸입니다.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요? 

이 아이가 죽을 병이 걸린 것을 알고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을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아이가 곧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회당장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 그 발 아래에 엎드려 간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애타게 간청하는 야이로의 마음을 몰라주십니다. 

지금 한시가 급한데, 예수님이 늑장을 부리십니다. 

42절에 ‘무리가 밀려들더라’로 표현한 부분의 헬라어는 문자적인 뜻이 ‘완전히 질식시키다’입니다. 

본문에서는 ‘거의 호흡이 곤란할 만큼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누르다’의 의미가 됩니다. 

그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다는 거지요. 

그런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예수님이 열두 해 혈루증을 앓은 한 여인을 찾습니다. 

자기에게 손을 대었다는 이유로 찾고 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사실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지도 않았습니다.

옷 가 즉 옷도 아니고 옷술(옷 가장자리에 장식용으로 매어 달아 늘어뜨린 실이나 가는 줄)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이라면, 그것도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몸이 서로 부대끼는 상황에서라면, 

이 여자가 손을 댄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닿은 것은 그 여자의 손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여자의 믿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은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입니다.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꿋꿋이 끝까지 여인을 찾아 자초지종을 다 실토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지체하고 도착하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이 시커멓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또 한마디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지금 예수님은 병을 고치고 죽은 아이를 살리는, 당장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관심, 바로 우리들의 관심이 병 고치고 죽음을 피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을 때 

예수님의 관심은 '믿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를 살리신 사건은 정말 놀라운 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가려져 버리고 대신 병 고치고 육신의 생명 다시 살린 것만 부각 될까 봐서입니다. 

그런 것에만 우리의 관심이 쏠릴까 염려되어서입니다.

회당장의 딸 문제와 혈루증 여인의 문제 중에 어느 것이 급한 문제입니까? 

우리의 생각에는 당연히 죽어가는 회당장의 딸 문제입니다. 

이는 분초를 다투는 매우 급박한 문제입니다. 

그에 반해 혈루증 여인의 병은 12년간 앓아온 병입니다. 

한두 시간, 혹은 하루 이틀 해결이 늦어져도 크게 문제없는 병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보다도 육신의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 더 급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일부러 지체하십니다.

우리가 조바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해도 태연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그건 급한 게 아니야. 진짜 급한 것은 이쪽이야. 이것 먼저 해결해야 해. 

이것 해결되면 그것은 해결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상관없을 정도의 작은 문제가 될 뿐이야.”

“참된 믿음 있으면, 문제가 엉망이 되어도 다시 풀어낼 수 있어. 

그러나 술술 잘 풀려가는 것 같지만, 믿음이 없으면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이 꼬여버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뭔가에 쫓겨 바쁘게 지낼 때가 많습니다.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에 조바심을 냅니다. 

뒤돌아보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쫓기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모습,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할 일, 믿음의 일에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멈출 때 멈추고 예수님이 바라보라 하는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예,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내게도 중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에게 이 믿음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 믿음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믿음 만들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믿음 얻기 위해 예수님 따라다니는 우리들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어떤 바쁜 일보다도 믿음을 쌓는 일, 믿음을 좇는 일에 

시간을 우선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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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첫 번째 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외동 딸이 병들어 죽어가는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혈루병을 앓은 여인은

간절함과 절박함은 최고조에 달해 있어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의 상태를 믿음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오늘 예수님은  여인이 가진 마음을 믿음이라고 하셨고, 야이로에게는 믿기만 하라고 하신다. 

그렇다.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이 분이 어떤 분(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이신지에 대한 지식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이분이 자신의 병을 고치고 딸을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을 것이다.  

 

한시가 급한 조급한 야이로를 답답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혈루병 앓고 있는 여인의 돌발 행동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군중들에게 떠밀려 걷고 있는 와중에 누가 자신의 옷에 손을 댓다고 따지신다.

모든 무리를 멈추게 하신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무리들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의아해 한다.

누가는 이 예수님의 행동에 대하여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도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확인하시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김 목사님의 묵상처럼 무리와 야이로에게

참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 우선적이고 진정 중요한 일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시는 것인가?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구원에 합당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믿음을 달라고 간구한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자신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할까 봐 가지는 염려와 불안일까? 두려움일까?

유한하고 죄인인지라. 어린에처럼 온전히 믿지 못하여,자신의 부족함이 너무 많아서 

언제 믿음이 약해지고 잃어버릴까 봐 믿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영원한 미래형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입성과 영생을 소망한다.

그 소망의 간절함이 오늘 혈루병 앓고 있는 여인과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야이로의 마음과 같은가?

가면 좋고.. 그 정도의 마음인가?

 

믿기만 하라!

믿음은 자기 세뇌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결단이다. 행동이다. 

나의 이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것이기다라는 생각도 든다.

 

현실의 모든 문제를 뛰어 넘는 믿음

생명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유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지는 영혼에 대한 믿음

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분에 대한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동의하여 내린 결론적인 믿음

그러나 이성적인 믿음의 단계를 넘어 성령이 역사하신 주신 믿음

그것에 온전히 반응하는 믿음

신실하시게 역사하셔서 이 믿음이 온전히 믿어지게 하시는 믿음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누가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주님의 처방은 '믿기만 하라' 하신다.

믿음은 비가시적인 것이라서 수많은 언어로 표시한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하기가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필수불가적, 절대적인 것이 믿음이다.

결국 믿음은 행동을 통해서 증명될 수 밖에 없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삶으로 그 믿음의 길을 살아내고 걷는 것이다.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