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계시록 6장 1-17절
종말시대에 이 땅에 임하는 재앙들이 시작된다.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이 임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일곱 인 재앙에 관한 내용이다.
먼저 네 말, 흰 말-붉은 말-검은 말-청황색 말 재앙이 있고
하늘 보좌 앞에 있는 순교한 자들의 탄원의 기도가 있으며
여섯 번째 인을 떼자 우주적 재앙이 펼펴진다.
요한은 재앙, 각 재앙마다 완전 수 7가지 재앙 그리고 하늘의 수 3번의 재앙을 소개한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만나는 재앙이 다르고
범위와 강도와 세기가 다르며 순서가 다르고 반복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종말 시대에 다양한 재앙을 만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재앙, 환란을 어떻게 이기고 통과하며 이길 것인가이다.
누구나 만나는 재앙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환란을 통과하기 위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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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인 재앙 ]
어린양이 인을 떼자 엄위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
화평이 사라지고 기근과 죽음이 찾아올 것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회개할 기회를 남겨 두신다.
어린양이 인을 떼자 일찍이 스가랴 선지자가 보았던 네 말을 통해(슥 6:2-3) 땅 위에 심판이 실행된다.
첫째 인을 떼자 흰 말(군사력, 정복)을 탄 기사가 세상을 이기고 또 이긴다.
내 안위와 성취만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올라간 사람들은 몰락하고 또 몰락할 것이다.
둘째 인을 떼자 붉은 말(분쟁, 전쟁)을 탄 기사가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든다.
인간의 맹목적인 야욕과 권력 다툼은 끊임없이 배반과 배신의 역사를 낳았고,
세상의 혼란과 갈등만 증폭시켰다. 이것이 심판의 이유이자 보응이다.
셋째 인을 떼자 극심한 '기근'(검은 말)이 닥친다.
'저울'은 식량 부족과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세상 절반이 굶는 현실을 외면한 채,
성공하고 부요하여 강대국의 반열에만 오르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번영이 아니다.
내 생존이나 삶의 질만큼이나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기을이고 있는가?
넷째 인을 떼자 '사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호아색 말이 나와서 땅의 4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심판 속에서도 대체 양식을 남겨 두시고 땅의 '4분의 3'의 멸망을 유예하신 것이 하나님의 자비이다.
임박한 심판 앞에 아직 돌아올 시간은 있다.
그것마저 외면하다가 파멸의 길을 자초하지 말자.
세상을 심판하여 순교자들의 억울함을 풀고 의로움을 확증해 달라는 기도에,
"순교자의 수가 더 차기까지 기다리라"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신실한 증인들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자,
그 증인들로 인해 회개할 이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섯째 인에 속한 순교자들의 기도는 여섯째 심판의 근거가 된다.
여섯째 인을 떼자 전 우주적인 재앙이 일어난다.
교회를 핍박하던 세상은 무너지고. 이로써 성도의 정당성이 입증되고 하나님의 정의가 증명될 것이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증인의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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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목)
[ 확실한 승리를 위한 시련으로서의 환란 ]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은 어린양의 권세를 믿는 자들이 이기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이길 것을 확신시키며 응원하려고 주신 말씀입니다(1:3).
계시록의 예언은 결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이 일곱 인을 떼실 때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미리 그 의미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잘 모르면 두려워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니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하겠지만 지나쳐서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666, 짐승, 붉은 용, 그 어떤 것이라도 성도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 뿐입니다(9:4).
일곱 인 중의 첫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일곱 인의 사건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첫째 인을 떼실 때 그것이 교회의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동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미 이기고 있고, 앞으로도 또 이기는 일에 대한 것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1-2절).
흰 말을 탄 자를 단순한 정복자, 전쟁을 일으키는 자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표현은 계속되는 승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가 ‘면류관’을 받았다는 점은
이 승리가 단순히 물리적인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성도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어떤 시련과 환란 가운데서도 성도가 승리할 것을 미리 예표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이 가장 먼저 떼신 인을 통해 승리하는 말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첫째 인의 의미가 그러하다면 둘째 인에서 여섯째 인에 이르기까지 진행되는 역사도 구원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땅에 전쟁과 환란(4절)과 기근이 닥치지만(5절), 성도의 순교가 일어나지만(11절),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그것은 인을 떼시기에 합당한 분이 가지고 계신 두루마리에 의해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그분의 허락을 받아(4절) 벌어지는 일이고,
감람유와 포도주가 없어질 정도의 기근은 막아주시는(6절) 가운데 진행되는 일입니다.
단지 1/4의 권세만 받아, 이미 사망을 이기신 분 앞에서 사망으로 위협하는 시위일 뿐(8절)입니다.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서, 잠들어 있는 자를 깨우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단련하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환란을, 기근을 허락하실 뿐입니다.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만 진행되다가 어린 양의 진노의 날(17절)에 종결되는 일입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한 시련으로서의 환란일 뿐입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일곱째 인을 통해 보여주시는 시련과 환란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중요했다면 첫째 인을 떼실 때 그 환란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또 다섯째 인을 떼실 때도 그 인을 떼심으로 발생하는 환란을 언급하는 말씀이 먼저 주어졌을 것입니다.
첫째 인에서도, 다섯째 인에서도 환란의 내용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승리를 위한 환란이라는 점, 순교자의 수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인내의 환란,
믿음 단련을 위한 환란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환란의 내용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확실한 승리와 그를 위한 믿음 단련만 강조하셨습니다.
주님, 확실한 승리를 위해 환란을 예고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기게 하셨고, 앞으로도 이기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환란을 통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단련시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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