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글모음

유품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8. 5. 10:05

송길원 목사 페이스북에서 퍼옴

<유품정리사로서 첫 출동기>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숨 막히는 역겨움이 몰려온다.

곰팡이와 썩은 냄새가 뒤엉켜 코를 찌른다.

공기마저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다.

끈적이는 혈흔이 비위를 비튼다.

나도 모르게 손을 입에 갖다 댄다.

탁자 위에는 반쯤 먹다 남은 음식과 포장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부자리며 흩어진 살림살이 도구들로 12평짜리 아파트는 더 좁아 보인다.
구더기들은 성충(成蟲)이 되어 날아가 버린 지 오래란다.

3주가 지난 고독사의 현장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생지옥(Hell on the Earth)이라 하는 걸까?


나는 이 처참한 현장에 서서 묻고 또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유품이 가장 값진 ‘문화재’일 수 있다는 건가?”

내 시선이 멈춘 것은 비 바람을 맞지 못한 우산,

고인의 멈춘 심장을 대신한 째각거리는 시계,

더 살아보라는 약통들의 몸부림이 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법정의 증거물처럼 남아 있다니....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고인(성OO)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사람으로 서 있는 내가 한참이나 낯설다.


잠시지만 유품들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우산이 말했다. 위로란 우산을 바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라고.

옆에 있던 손목시계가 말했다. ‘템푸스(연대기)’의 시간에 매달리지 말고 ‘아에타스(별의 순간)’를 살라고.

약통들이 죽음에 겁먹지 말라며 말해준다. 죽음은 완벽한 치유라고.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마지막으로 끼어든 것은 제발 돈 때문에 목숨 걸지 말라는 지폐였다.


숨을 고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좁디좁은 현관에 놓인 자전거가 64년 인생을 증언하는 듯 보였다.

고인은 저 자전거를 타며 하늘나라로 비행하는 연습이라도 했단 말인가?

다시 내가 내게 물었다.

내가 고인의 자녀라면 이 많은 유품 가운데 무엇을 챙겨갈까?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아랫 층의 할머니가 복도에 서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묻는다.
“어디서 오셨데유?”
“저, 잠시 들렸다 갈 사람입니다.”(아, 이게 인생이구나)
그 할머니가 내게 넋두리를 한다.
“옆집 할매가 이 더위에 문을 꽉꽉 잠가 놓고 며칠 째 보이지 않아. 자기가 보이지 않거든 신고하라고 했어.”

그 말에 가슴이 덜컹 한다.
할머니가 한숨 섞인 한 마디를 내뱉고 돌아선다.
“아이고. 이 할매도 갔~남?”
나부터 떠날 때는 작별인사라도 하고 가야겠다 다짐한다.

[청소부가 된 성자들]의 첫 번째 출동은 질문에서 질문으로 끝났다.

아직도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삶을 재촉한다.

코로나의 한 복판에서 특수 청소업을 시작했다는 조은석대표가 베테랑 답게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해 준다.
“목사님, 시신을 거두고 마무리 청소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느낌이에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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