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모압의 최후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8. 9. 08:49

본문 : 예레미야 48:11-25

 

그모스를 의지하여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자랑하며

바벨론의 침략으로 부터 안전하다고 허세를 부리던 모압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모압에게 재난이 가까왔고 속히 닥치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변 사람들이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묻는다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울면서 부르짖으며 모압이 황페하였다고 말한다.

 

심판이 평지, 모압 땅 인근 모든 성읍에 이르러

모압의 불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군사적 안정과 평안을 누리던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폐허가 된다.

안전과 번영을 보장해준다고 믿었던 용맹과 그모스 역시 무너진다.

 

한없이 높아졌던 이웃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오방방자하던 모압의 교만 때문에

철저히 심판을 받는다.

 

현재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 군비확충과 최신 무기들로 무장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는 흘러도 과거나 현재나 인간들의 생각은 동일해 보인다. 

안전과 평안을 의지하는 개인의 생각도 비슷하다.

경제력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며, 우상들을 섬기는 것을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의지하고 믿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고 붙들고 있는 것들을 더 신뢰하는 것이 인간이다.

장래의 천국보다 당장 내 통장에 있는 수억의 현금을 의지하는 것과 같다.

이만하면 노후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부자 농부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진짜 모습이었다.

아닌 것처럼 포장되고 애써 외면하던 초라한 모습이 들어났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허망하다. 

내 믿음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빈손으로 돌아온 나에게 하나님이 나의 정직한 모습을 보게 하신다.

여기서 멈추게 하시고 돌아서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공수레 공수거라는 말에 위로를 삼는다.

노후를 의지할려고 했던 물질을 다 빼앗기게 하시고 주만 바라보게 하신다.

주님 이외의 것들에 의지했던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철저히 주님만 의지하게 하신다.

조금, 약간, 이것은, 이 정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하면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허황된 꿈을 버리고, 요행을 바라지 않고  땀 흘려 일한 것으로 만족하며 정직하게 살아야지.

다시는 이런 실수와 잘못을 두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또 다시 죄를 범하고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끝장이다. 

돌아보면 참 여러가지 죄를 범하고 살아왔다. 상처투성이와 허물투성이 인생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두번 다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때가 항상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들이 더  안전하고, 더 확실하며, 더 능력있음을 믿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굳게 신뢰하며 믿어야 한다.

바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것이 온전히 믿어지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어지는 믿음(피스튜오)을 주셔야 한다.

날마다 이 믿음을 영위해 가도록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시 마음을 추스린다. 다잡는다.

 

나는 어떤가?

정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참 의지 하는가?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과연 하나님을 내가 바르고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인가?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통해 세뇌가 되어 믿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며, 나의 죄와 허물을 자백하며 회개한다.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그 믿음이 견고히, 흔들리지 않게, 의심하지 않게 해 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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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철저한 심판을 시행하신다.

'여호와의 일'은 모압에 대한 공격으로, 그 땅을 폐허로 만드는 일이다.

만약 심판의 도구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 모압에 대한 자비와 연민으로

하나님의 심판 수행을 게을리 한다면 그들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랑의 하나님'에만 너무도 익숙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균형'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철저한 징계를 내리시며,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균형 있는 지식을 배워가고,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한 영적 감각이 길러지기를 기도하자.

 

모압이 심판을 초래한 근원적 이유는

그들이 의지하던 업적과 보물, 우상으로 섬기던 그모스 때문이었다.

'업적'은 그들이 이룬 군사력과 관련되어 있고, '보물'은 그들이 축적한 경제적 부와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의지한 그것' 때문에 멸망을 자초했다.

자랑하던 업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안정의 근거로 삼아오던 재물은 약탈당한다.

이에 더하여 그들이 수호신처럼 섬기던 그모스는 제사장들, 고관들과 함게 포로로 잡혀간다.

하나님 외에 어떤 재물과 우상도 만족과 안정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안식과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헛된 자랑과 재물 사랑과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

 

b.

모압의 수도 옛 수도 '디본'에게 요새가 무너졌으니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명하시고,

모압의 북쪽 전략적 요충지인 '아로엘'에게는

"무너진 모압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자들에게 도망의 이유를 물어보라"명하신다.

파멸을 인정하고 확인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화를 누리던 자들을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릴 것이며,

죄의 무게에 상응하는 형벌을 내릴 것이다.

심판의 때를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처신

이 땅에 무너질 요새, 곧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에 속한 우상들'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쉬 사라지는 것들이 영원한 것을 대체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모압의 뿔을 잘라버리고 팔을 부러뜨리신다.

뿔이 잘릴 것은 권세와 힘의 상실을 의미하고,

팔이 부러진 것은 완전하게 무력한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때 모압의 자랑이던 것들이 모압의 수치가 된다,

나를 지켜주고 나의 존재감을 높혀준다고 믿는, 내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체 없는 우상과 헛된 자랑은 언젠가 나를 배신할 날이 올 것이다.

변하지 않는 진정한 대상인 하나님을 의지하다.

 

모압의 오랜 평안과 군사적 안정은 그들을 오만한 자리로 이끌었다.

모압은 급기야 스스로를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고 외치며 절정에 이른 자긍심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평안을 보장했다고 신봉했던 그모스가 무능한 우상임이 드러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수호신을 부끄러워하며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평안을 지켜주던 실체는 그들의 용맹도, 그들이 섬기던 그모스도 아니었다.

오직 심판을 유보하고 그들을 보호하시던 하나님의 은혜였다.

내가 지금 평안을 누리고 형통의 복을 누리는 것도

나의 능력이나 지금 내가 의지하는 대상 때문이 아니다.

궁극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을 뿐이다.

 

헛된 자랑과 우상을 버리고, 영원한 안전한 근거이신 하나님을 찾게 하소서.

 

c.

높아질 대로 높아진 모압이 교만을 심판하신다.

온갖 교만에 취하여 이스라엘을 조롱했던 그들이

이제는 자신이 토한 오물에서 뒹구는 추한 모습으로 전락하여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실 모압이 자랑하는 것들은 그들이 잘나서 읻은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긍휼로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도 모압은 그것을 자랑의 기회로 삼고 어려운 이웃 이스라엘을 거침없이 조롱했다.

하나님조차 눈 아래로 두는 자들이었기에 비천한 처지의 이웃을 향해 얼마나 거들먹거렸을지 짐작이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를 참고 보지 않으신다.

모압을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시고 가장 수치스런 상황에 직면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교망과 이웃을 향한 거만은 꺾이고야 만다.

 

풍성한 결실로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던 모압 땅에

포도주 틀에 포도를 넣고 즐거워하는 환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 침묵의 자리에는 심판의 고통으로 인해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하다.

비록 그들의 교만함과 죄 대문에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은 풍요롭던 그 땅에 찾아온 황폐함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거룩하시기에 악을 용납하실 수 없을 뿐, 결코 심판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복을 거둬들이고 심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음 아파하시며 슬퍼하신다.

 

모압 북쪽 지역과 남쪽 지역이 모두 처참하게 유린당하도록 내어 주신다.

모압의 오아시스이자 젖줄이던 니므림의 물조차 말라버려

극심한 갈증을 호소하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방방곡곡을 메울 것이다. 

산당에서 거짓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분향한 자들은 하나님의 불타는 분노로 멸절에 이를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소멸하는 분이시며 질투하시는 분이다.(신 4:24)

나의 생각이 사랑의 하나님에 치우쳐 있어 심판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내 생각의 균형 잡기가 필요하다.

 

이웃에 대한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감하고 섬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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