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 42장 15-22절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유다에 남아 살 것을 전하고
그렇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것, 곧 애굽으로 내려가 살려고 한다면
여호와의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그들을 따라서 거기서 죽이리라고 선포한다.
사람은 이렇게 간사하다. 어리석다. 죄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하려 한다.
하나님의 뜻, 진리보다도 중요한 것이 자신이다.
하나님의 뜻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해석하고 취사선택한다.
이것이 인본주의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류가 생각하는 것이 이러하다.
장래 유다의 회복을 위하여 유다의 남은 자로의 삶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들의 안전과 미래는 보장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지만,
인간적인 상황 판단으로는 바벨론의 보복은 확실한 것이어서
애굽의 보호 아래로 도망가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불러 세우고
하나님의 뜻이 어떤하든지 주신 그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였건만 ...
왜 이렇게 마음이 변한 것일까???
맹세와는 다른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맹세는 왜 했을까?
어차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동할 것이었다
단지 자기들의 결정과 행동에 동의와 확인을 받는 절차이고, 변명과 명분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
출애굽 백성들도 동일한 불평과 불만, 불신과 불순종의 삶을 살았다.
광야에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애굽의 노예로 사는 것이
최소한 의식주는 해결되니까 목마름, 배고픔, 굶어죽는 것보다는 났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살아가도록 출애굽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현재의 상황에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불평한다.
나 또한 이것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매일 많은 것들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선택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성령님의 뜻 보다는 나의 생각, 지식, 경험, 지혜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모든 것의 주도권을 온전히 성령님께 맡겨 드리지 못한다.
성령의 충만은 결국 성령께서 온전히 나를 지배하시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과 같고, 주님의 뜻이 나의 삶이 되는 상황 말이다.
기도와 고백에 일치하고 합당한 삶이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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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남은 자들은 바벨론이 그다랴가 암살당한 일을 문제 삼을 것으로 생각하고 애굽으로 피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이 맡기신 삶의 양식을 지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위기를 피하려고 혹은 편안함과 부유함을 좇으려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떠나면 도리어 제난을 만난다.
내가 있을 곳에 있는지, 혹시 안락을 좇아 하나님이 금하신 자리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점해보자.
요하난을 비롯한 백성은 '유다의 남은 자'이면서, 유다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유다에 남겨두신 자'이다.
그들에게는 유다에 머물러 회복의 날을 기다리며 삶을 영위해 갈 책임이 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교회의 회복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남겨두신 자들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두시며 맡기신 역할을 찾고, 남은 자로서 책임을 다하자.
유다의 남은 사람들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유다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애굽으로 갈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예레미야는 그들의 순종 맹세를 상기시키며,
그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을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씀만 골라 듣는 것은
영적인 생명력을 잃는 실수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욕구를 우선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나 자기만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지만,
유다 사람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는다.
일을 그르치는 것은 선지자의 태만이 아니라 백성의 불순종이다.
말씀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숨김없이, 왜곡없이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래야 공동체가 말씀의 능력과 말씀이 가져다주는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순종의 다짐이나 고백으로 순종의 삶을 대신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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